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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May 17. 2017

구덩이 속의 가장, 배우자에게 말을 걸다

우리, 일과 가정,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배우자와 끊임없이 대화해요

일과 가정의 저울질 앞에서 
'가장'의 직장생활은 괴로운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가정에서 가장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일에 매몰되어가고 있다'랄까요..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느낌은, 아~ 마치 금을 캐기 위해 땅을 파는 것과 같았어요.
조금 팠더니 금이 조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팠어요. 
역시나 금이 조금 나오는 거죠. 
계속 팠어요.

구덩이는 점점 더 깊어지고 내 키를 훌쩍 넘어버린 저 구덩이 아래에서 금이 조금씩 나올 때마다 나를 향해 내려다보는 아내와 아이에게 그 금을 던져주었죠. 

금을 던져주었지만 나를 내려다보는 아내와 아이의 표정은 마냥 행복해 보이진 않았어요.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 듯 보였어요.



그럼에도 계속 구덩이 파 내려갔어요. 
금을 얻기 위해 나 자신이 조금씩 조금씩 매몰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어요.
어느 날 한쪽으로만 계속 파내려 가던 구덩이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거예요.
그때야 너무 깊이 파 내려가 스스로 구덩이를 빠져나올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렇다고 다른 쪽으로 구덩이를 팔 수도 없었어요.
파내려 가던 방향으로 계속 파다 보면 금은 조금씩 얻을 수 있었지만 멀지 않은 시간에 무너져 내릴 것은 자명했어요.

깊은 구덩이 속에서 힘없이 서 있어요. 

'더 파내려 가며 무너질 때까지 금이라도 조금씩 나를 내려다보는 가족에게 던져줄 것인가'

한참을 고민해요.

어떤 이는 고민 끝에 구덩이가 무너지더라도 마지막까지 금을 캐려 해요.
하나 어떤 이는 아래를 보지 않고 위를 향해, 가족을 향해, 자그맣게 소리쳐요.
밧줄을 내려달라고 말이죠.

너무 깊이 내려와 버린 그의 외침은 가족에게 잘 들리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래도 용기 내서 다시 한번 온 힘을 다해서 외쳐요.
밧줄을 내려달라고.



구덩이저 위 쪽에서 무엇인가 희미한 소리가 들려와요. 
귀를 쫑긋 세우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니,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아요.
아내와 아이가 밧줄을 던지는 소리였어요.

저 또한 예전의 직장생활에서 '일에 매몰되어간다'라는 것은 바로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잃어버린 채 그럴듯한 경제적 가치를 누리는 삶에 모든 책임을 떠 넘기고 앞만 보고 달렸어요.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만 너무 쏠려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멈추지 않았어요. 아니 버티고 있었어요.

어느 날 계속 아래만 보고 구덩이 만파던 저에게, 위에서 밧줄을 던져 주며 대화를 건넨 건 아내였어요.
"우리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걸까?"

그 이후로 아내는 계속해서 대화를 청했어요.
비록 그 구덩이를 빠져나오지는 못했지만 저 구덩이 아래에 있는 나와 저 구덩이 위에 있는 아내는 큰 소리로 '사는 것'에 대해서 매일매일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급기야 아내가 대화를 청하기 전에 내가 먼저 고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죠.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어요.



그리고 결국, 아내는 10여 년 동안 한 구덩이 속에서만 금을 캐던 나를 꺼내 주었어요.
회사를 그만둔 거예요.
아내는 내 옷에 묻은 흙을 깨끗하게 털어주었어요. 그리고는 등을 토닥여주었어요.
'수고했다'라고....
일과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아내와 함께 나누었던 수많은 대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어요. 
그리고 쉴 자격이 있다며 아내로부터 선물 받았던 1년여의 '쉼'의 시간들은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고 아름다운 시간들이었어요. 

1년 동안의 '쉼' 이후, 전 지금 다시 직장으로 돌아왔어요.
한 구덩이만 십여 년 동안 파다가 다른 구덩이를 새로 파려 하니 쉽지 않더라고요. 
하나 '쉼'의 시간들을 후회하진 않아요.
파던 구덩이를 계속 파며 아내가 내려준 밧줄을 타고 올라가 조금씩 조금씩 여기저기 새로운 구덩이들을 파고 있으니까요.

땅은 넓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매몰되지 않고 일과 가정, 일과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배우자와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충분히 다른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저도 아직 그러하진 못했지만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실현될 수도 있겠단 생각까지 도달했어요.



우리 모두 잊지 말기로 해요.
가장의 건강한 변화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가족과의 대화에서 시작된다는 것을요.

그럼 이제, 아내에게 말을 건네보세요.
"사랑하는 마누라, 우리 이야기 좀 나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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