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시작되고 그것들은 거짓말처럼 이어졌다.
예전에 유호정, 이기우, 김 범이 출연했던 드라마를 아내와 함께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유호정과 그녀의 아들 김 범이 살던 일산 어딘가의 이쁜 단독주택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재미나게 엮어낸 드라마였습니다. 배경음악으로는 이문세 형님의 '알 수 없는 인생'이었죠. 이 음악을 배경에 펼쳐놓고 바라봤던 그 단독주택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어왔지만 한편으로는 견우와 직녀처럼 이룰 수 없는 사랑처럼 그저 꿈으로만 느껴졌던 기억이 폴폴폴 피어오릅니다. 어쩌면 이 드라마는 제가 가졌던 이 감정을 저뿐만 아니라 모든 이에게 전하고자 했었는지도 모릅니다. 꿈같은 집에서 펼쳐지는 꿈같은 사랑, 하지만 인생은 '알 수 없는 인생'의 노랫말처럼 알 수 없으니 묵묵히 가던 길을 가는 것이 어떻겠냐 라구요.
요즘 들어 '인생은 알 수 없다'라는 말, 많은 이들에게 술안주처럼 회자되곤 하는, 이제는 식상하기까지 한 이 구절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정해진 트랙 안에서 뱅뱅 돌기만 하는 장난감 모터 자동차처럼 그렇게 뱅뱅 돌기만 할 줄 알았던 나의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트랙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알 수 없는 삶'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길이 아닌 어딘가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헛바퀴만 굴리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그리고 트랙을 겨우 한 발짝 벗어나 다른 이들이 뱅뱅 돌고 있는 트랙을 바라봅니다. 언젠가는 건전지가 모두 다 소모되어 멈춰버리고 영원히 그 트랙을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폭풍처럼 밀려옵니다.
트랙을 벗어나니 역시나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라는 막막함에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이 야속할 따름이었습니다. '내가 이 정도였나'라는 자학의 밀물이 턱밑까지 차오릅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환경을 바꾸는 것은 높은 빌딩에서 수직 낙하하여 맨땅에 부딪히는 것과 같은 충격파를 온몸으로 감내해야 하는 힘겨움이라고요. 그래서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의 험난함처럼 물리적으로 이 변화를, 충격파를 수렴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것을 알지 못했어요. 불안과 두려움으로 그 시간을 아내도 모르게 버텨내었어요. 지구의 대기권을 뚫고 올라가 미지의 우주에 첫발을 내디딘 우주인처럼, 이 충격파를 버텨내면 직장생활 속에서는 절대 알 수 없었던 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넘는 시간의 속도가 만들어낸 적지 않은 관성을 옴 몸으로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괜찮은 걸까, 이래도 되는 걸까, 어떻게 되는 걸까' 수많은 잡념은 덤이었습니다. 저에겐 퇴사가 그러했습니다.
노랫말처럼 인생은 정말 알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퇴사를 하니 퇴직금이 들어옵니다. 돈 있겠다, 시간은 남겠다, 하니 여행을 떠날 수가 있었습니다. 일하느라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다섯 살 아들과 아내의 얼굴을 이쁜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매일매일 24시간씩 저의 눈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똘똘 뭉쳤어요. 기분이 좋아지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켜켜이 쌓였어요. 새로운 나라에서 얻은 엔도르핀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이 에너지는 여행에서 돌아온 후 새로운 일에 대한 고민 하는데 적지 않은 용기를 주었습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진지하게 오랜 시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정도로 알찬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새로운 일을 찾았다거나 이로 인해 수익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그 당시에는 많이 힘들기는 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매우 건강한 경험이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려운 시간들은 부부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었지만 아내와 저는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고 힘이 되기 위해 배려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매일같이 마음속을 헤엄쳤습니다. 이러한 에너지는 경제적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였음에도, 살던 집을 팔고 '시골에 집을 새로 지어보자'는 다소 충격적인 아내의 제안을 실현하도록 용기를 주더군요. 집을 짓고 예상치 못한 빚이 턱밑까지 차올라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회사는 변하지 않았지만 회사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가 적지 않게 바뀌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다시 돌아간 회사에서 빚을 같으며 '새로운 일' '지속 가능한 일'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자격증 문제 출제위원으로 선정되기도 하고 글쓰기에 대한 노력도 이어가 글쓰기 이벤트에서 수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새로운 일을 대하는 그 시간들이 즐거워집니다. 이제는 퇴사가 두렵지 않다는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변화의 상황이 닥치면 누구나 어렵습니다. 그냥 침착하게 지켜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 주변은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를 다녀온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준비하지 않으면, 그렇게 대책 없이 퇴사하면, 마치 엄청난 재앙이 벌어질 것처럼 겁을 주는 걸까요.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해주고 거짓말처럼 내 주위를 맴돌며 얽혀 있던 것들이 그 실타래를 풀고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꾸만 이문세 형님의 '알 수 없는 인생'을 흥얼거리게 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