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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Apr 11. 2018

결이고운가의 요즘

혹시 모를 누군가를 위해 결이고운가의 요즘을 알립니다


@ 회삿 일과 나의 일
회사에서 주로 보안 관련 개발 인증업무를 맡고 있다. 실패할 경우 많은 비용이 소요되기에 정신 바짝 차리고 해야 한다. 야근이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매일같이 양평의 환상적인 별빛 세례를 받으며 결이 고운 가로 들어선다. 회사가 나에게 월급을 주니 나도 그만큼 일을 한다. 예전처럼 회사에 대한 커다란 환상에 빠져 모든 걸 바치려 하지 않는다. 회사가 나를 이용하고 내가 회사를 이용한다. 그리고 지속 가능한 나의 일을 찾는 여행은 계속된다. 
헌데, 몸이 힘든 건 참, 어쩔 수 없다.




@ 아내의 붕붕이
1년 전까지만 해도 아내가 차를 몰고 다닌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식탁은 가만히 있었는데, 시퍼렇게 멍이 든 무릎을 가리키며 식탁이 나를 쳤다며 성을 내던 아내였다. 이랬던 아내가 지금 차를 몰고 다닌다. 헌데, 잘 한다. 차분하게 후진 주차도 하고 좁은 길도 잘 다닌다. 어느 날 아내가 타고 다니던 모닝이 너무 안 나간다고 말한다. 운전도 조심히 잘 하고, 차가 있어 더욱 생기 있어 보이는 아내가 보기 좋아, 큰맘먹고 차를 바꾸어 주었다. 쌩쌩 잘 나간다고 어찌나 좋아하던지, 내가 더 뿌듯하다.
대단한 사람들은 빅 픽처를 그린 다음 그 그림대로 행한다고 했던가, 아내와 나는 먼 미래를 내다보며 빅 픽처를 그리기엔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그래서 일단 저질렀다.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 털어 장기 가족여행을 떠나고, 나들이 간 양평에서 한눈에 반한 땅을 계약하고 집을 지었다. 이사를 왔지만, 생계가 가능한 나의 일을 갖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직장을 다시 구했지만 시골에서 출퇴근길이 걱정되었다. 허나 거짓말처럼 집에서 회사까지 출퇴근 시간의 절반을 줄일 수 있는 고속도로가 개통되었고 회사 앞까지 이어지는 전철이 연달아 개통되었다. 아내와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든 솟아날 구멍은 있는 거구나...'
아,,,, 이야기가 잠시 딴 데로 흘러갔는데, 뭐 거창한 건 아니고 이유는 있다. 큰맘 먹고 2000CC로 차를 바꾸고 나니, 아내가 다니던 학교의 전공 교수님에게 연락이 왔다. 강의를 해 줄 수 없겠냐고. 일주일에 한 번이니 결군 돌보는 것에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이번 금요일 아내는 학기 개강 후 첫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다. 워낙 배우는 걸 좋아하고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아내라서 언제나 활기차긴 했지만,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의 얼굴엔 새로운 생명이 피어나는 듯 생기가 넘쳐 보였다. 행복해 보였고 즐거워 보였고 신나 보였다. 양평 내에서만 돌아다니기 위해 샀던 모닝을 조금 큰 차로 바꾸니, 이렇듯 또다시 거짓말처럼 큰 차가 필요한 일이 생겨났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그것을 행하기보다 그것을 행하다 보니 어떤 일이 다가온 것이다. 양평에 온 이후, 신기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중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결군


@ 유치원은 유치해, 이제 난 초등학생이야
 유치원은 유치하다는 결군,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다. 더불어 아내와 나는 학부형이 되었다.
유치원 졸업식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초등학교 입학식에는 참여했다. 마을 앞 시골학교 입학식엔 초 8명의 1학년 학생이 참여하였다.  새로 생긴 우리 마을에만 무려 4명이라는... 뭐가 그리 좋은지 1학년 초등학생들은 싱글벙글이고 이제 갓 6학년이 된 형, 누나들은 서로 장난치느라 시끌벅적하다. 사회를 보시는 교감선생님은 마치 소싯적 개그맨이 꿈이었던 지망생처럼 근엄한 표정으로 농담 세례를 줄기차게 날리신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인 신기한 입학식 한창인데, 난 지금 이곳에 나와 아내가 서 있다는 것이 더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출장 때문에 아들과 몇 개월씩 떨어져 살고, 북적대는 도심 한가운데서 살던 우리 가족이 한적한 시골 어귀로 이사 와 집을 짓고 아들 입학식에 자리하고 있다니 말이다. 




@ 봄이 온다
양평의 봄은 끝내 준다. 어찌 말로 표현하랴. 이러한 봄의 분위기를 한껏, 우리 결이 고운 가에서 끌어올리기 위해 아내는 만발의 준비를 하고 있다. 드디어 올해의 삽질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당 스케줄이 빡빡하고 주차장 작업에 담장, 데크.... 올봄은 얼마만큼 삽질을 할지 또 내년 봄엔 어떻게 다시 뒤집을지 .... 결이 고운 가의 소꿉장난은 곧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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