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좋은 드라마를 보는 중입니다
아내가 말했다.
"물어보지 말고, 확인하지 말고, 그냥 힘들었겠구나... 라고 말했어야지..."
요즘 아내와 내가 챙겨보는 드라마 라이브를 보며 말했다.
최명호 경장(신동욱)은 성폭행을 당해 낙태를 해야 했던 과거를 토해낸 한정오 시보에게 늦은 밤 전화를 했다.
"괜찮은 거지?"
이 장면에서 동시에 아내가 툭 건넨말이었다.
"바보, 괜찮을리가 있겠어?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묻는 건 아무 소용없어. 그냥 힘들었겠구나.
그 한마디가 필요할 뿐이야."
동시에 다음 장면에서 한정오(정유미)는 대답했다.
"괜찮지 않아요. 끊을게요."
아내와 함께해온 16년이라는 시간, 아내로부터 여전히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그 중 가장 힘들었던 것, 남자의 '해결 본능'을 억제하고 있는 그대로 지켜 봐주고 같이 느껴주는 것이었다.
오래 전 일하던 병원에서 부조리한 상황을 겪었던 아내가 퇴근 후 나에게 말을 건넬 때면
상처입은 아내의 마음을 알아주기는 커녕, '내일 나도 병원갈께, 가서 그 xx들한테 욕이나 한바가지 해야겠다'
라고 언성을 높히곤 했다.
그 때 당시, 그런 나의 행동들은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보려는 나의 욕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크게 상처를 받은 건 아내의 마음이었고, 이를 위로해 줄 사람은 나 뿐이란 사실을 난 몰랐다.
아내는 그 인간들이 쳐맞기를 원하고 욕바가지를 뒤집어쓰기를 원한것이 아니란 사실을 난 몰랐다.
아내는 단지
"많이 힘들었구나"
이 한마디가 필요했었단 사실을 난 몰랐다.
한정오는 다음 날 임상수(이광수)에게 물었다.
"넌 왜 묻지도 않고 아무말도 안해?"
상수는 두눈에 고여있던 눈물을 떨어뜨리며 대답했다.
"네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너무 슬퍼서 아무말도 할수가 없어. 위로를 해주고 싶은데 너무 슬퍼서 말이 나오질 않아"
대답을 들은 한정오는 한동안 펑펑 눈물을 쏟았다. 십수년간 삭혀둔 악몽같은 기억들을 씻어내기라도 할 것처럼 하염없이 울었다.
"말하고 나니, 속이 시원해"
이 둘의 러브라인을 기대하게 만든 장면이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딱부러지는 해결책보다는 따뜻한 말한마디와 살포시 안아주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 글을 쓰며 느낀 이 감정, 나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오랜만에 좋은 드라마를 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