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노 Nov 21. 2018

귀촌, 2년하고도 4개월

집 아내 아들 나 그리고 여름이도 그 시간의 터널을 함께 통과하는 중이다

언제나 그렇듯 8시에 일어나 여덟살 아들의 밥(토스트)을 챙기고, 아들과 함께 등교를 한다. 

"아빠, 빨리~ 아빠때문에 지각하잖아~!"

이 녀석은 내가 지 밥 챙겨주랴, 여름이(반려견) 밥 챙겨주랴, 양치하랴, 면도하랴... 아빠의 아침이 바쁜걸 아는지 모르는지 매일아침 똑같은 외침을 반복한다. 후다닥 뛰어 내려가 차에 오르니, 앞 유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아있다. 서랍을 열어 결군이 어릴적 듣던 동화씨디를 꺼내 앞유리를 박박 긁는다. 옛날 미술시간에 배웠던 스크래치처럼 서리에 감추어 있던 결군의 모습 일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녀석은 몇초전만 해도 아빠때문에 지각한다고 투덜대던 자신을 새까맣게 잊고 씨디가 만들어낸 좁은 틈으로 아빠를 보며 장난을 친다. 


학교 앞, 어뭬리카 스타일로 서로의 주먹을 탁 치고 내가 먼저 외친다.


"재밌게!"


그리고 차에서 뛰어내리던 결군이 외친다.


"신나게!"


총총총 교실로 뛰어들어가는 결군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분당으로의 50킬로미터 출근을 시작한다. 조금 멀긴 하지만 서울시내에서 짧은 거리를 꽉꽉 막히는 차들 속에서 50분 걸리는 거랑, 긴 거리지만 막힘없는 고속도로를 50분 달리는 거랑, 뭔 차이야? 하며 매일같이 자위하며 달린다. 서리가 진하게 내려앉은 오늘 기분이 센치했는지 앞 차들의 뒷번호판에 눈이 간다. 

그 중 눈에 들어온 숫자.


2016


귀촌한지 2년이넘게 흘렀다.

2016년 7월부터 우리 가족이 양평에 터 잡은지 벌써 2년 4개월이 흘렀다.

정속주행이 연비효율에 매우 탁월하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은 탓에 악셀을 밟은 나의 오른발은 들쑥 날쑥 하지 않고 속도90킬로미터를 유지하려 가만히 멈춰있었다. 길은 탁 틔이고 차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지난 2년 4개월을 되돌아볼 여유를 갖게 되었다.

2년이라는 시간은 짧지않기에 누구라도 아무일 없이 지내기는 힘든 시간이다. 정말 아무일도 없었다라고 얘기하지만 자알~ 증말 자알~ 생각해보면 적지 않은 일들이 있었구나라는 걸 깨닫고는 한다.

 

아내와 함께 한 이후, 한 집에서 3년이상 살아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지금 살고 있는 이집, 결이고운가가 3년이상을 살게되는 첫집이 될것임이 분명하다.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집이 귀촌해서 지은 집이라니, 뭐 좋지 아니한가.





이사올 당시 여섯살 인생을 살고있던 아들녀석이 자신의 생각을 눈 똑바로 치켜들고 말할 줄 아는 여덟살 인생을 살고 있는 중이다. 어느새 윗니 아랫니 도합 다섯개가 빠지고 두개는 벌써 훌쩍 자랐다. 아가때는 통증을 모르는 듯 잘 안 울던 녀석이 이빨 뺄때 온 사지를 뒤틀며 지구에 종말이 다가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두려운 눈으로 울어댄다. 참다 못한 의사선생님이 도구를 내려놓으며 "그냥 가라~"라고 말할 정도니.... 얼마전엔 네번째 이를 내가 직접 뽑으려다 얘 잡는다는 아내와 싸우기도 했었다. 헐... 아들 이 뽑다가 부부싸움 해보기는 처음이다.




결이고운가의 시작부터 함께했던 반려견 짱똘이가 떠났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여름이가 찾아왔다. 여름이는 아내가 산책하다 뒷산에서 한껏 굼주린 채로 발견되었다.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버려진 듯 보였다. 발견당시 세발자국 걷가 푹 쓰러지고 두발자국 걷다 쓰러지곤 했던 녀석이 지금은 마당을 날라다닌다.


작년까지 집의 모든 노가다는 아내의 손을 거쳤었다. 금손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참 거칠게 많은 마당일들을 해왔었다. 올 여름, 마당은 이 막손이에게 돌봄을 좀 받았다. 손바닥만한 잔디도 관리가 안되서 여름이면 마당 한구석이 잡초가 무성했다. 잔디를 쑤악 들어내고 벽돌을 깔았다. 벽돌집가서 1000장정도 사 온다음, 잔디를 다 혼자 들어내고 그 자리에 1000장을 혼자 깔았다. 뒷마당에는 창고를 옮기고 쓰레기통과 재활용을 위해 쌓아놓은 종이 박스들이 보이지 않도록 쓰레기 데크를 만들었다.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으니 세상 좋았다. 주말마다 수건 두르고 벽돌나르고 흙퍼나르고 톱질하고 하는 내 모습을 본 이웃집 남편들은 나를 염전 노예 바라보듯 쳐다보았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허나 울 아내는 악덕 염전 주인이 아니다. 내가 스스로 한거다.




아내는 마당일을 줄이고 나니 손이 가려운가 보다. 집안에서 손을 가만두질 않는다. 켈리그라피를 매일 같이 쓰고, 도자기도 가끔 만들며, 원목트레이도 만들고, 라탄공예도 하고, 요즘은 마크라메에 온몸을 불사르고 있다. 플리마켓에서 판매도 한다. 두달동안 취업도 했었다. 증말 대다나다, 울 아내님.




난 여전히 50킬로미터의 길을 매일 달리고 있다. 회사에서 일하고 주말이면 잠잘때가 가장 아름다운 우리 아들과 놀아주기도 하고퇴근 후 새로 꾸민 다락에서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지내고 있다. 경제적인 차원에서 지금 이후의 무언가를 준비하는 일은 참 맘대로 되지 않는다. 퇴사 후, 쉴 적엔 다 될 것처럼 보였는데, 막상 회사를 다니며 하려니 맘이 게을러진다.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고 좋아했는데, 다시 한발자국 내딛는 일이 쉽지않다. 지금을 느끼려 매일 매일 노력한다. 이 틈으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파고 들지 않도록 지금의 기분을 다부지게 메우려 생각한다. 


귀촌, 2년하고도 4개월이 지났다.

집도 아내도 아들도 나도 그리고 반려견 여름이도 그 시간의 터널을 함게 통과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마워 데이터 거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