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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Jul 04. 2019

공처가? 애처가?

아내는 함께 멋지게 늙어가자 말했다

아내는 함께 멋지게 늙어가자 말했다.

조금씩 늘어가는 흰머리와 함께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도 함께 늘려가자 말했다.



마을 혹은 회사 사람들,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끔 아내에 대한 얘기가 앞에 놓일 때가 있다.

농담처럼 웃으며 건넨 한마디가 상대방에겐 아내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꽤 깊게 자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대화를 이어나간다. 일종의 가벼운 오해라고 볼 수 있지만, 쌓이고 쌓이다 보면 진실인마냥 팩트로 굳어질 수 있는데도 말이다.

더군다나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나의 대화엔 항상 아내에 대한 배려가 궁핍해있었다.



오늘 아침 "나를 좀 더 배려해줬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는 아내를 보며 

곰곰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내가 없는 자리에서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때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까.


어릴 적, 부모님의 돌봄이 필요한했던 시절, 부모님은 항상 서로에게 팽팽하게 날이 서 계셨다.

엄마가 깔끔하고 완벽한 논리로 밀어부치면 아부지에겐 논리로 빠져나갈 공간이 요만큼도 주어지지 않았다.

화는 나지만 받아칠 말이 없었던 아부지는 앞뒤없는 큰소리로 그냥 외칠 뿐이었다.

엄마와 아부지의 싸움은 항상 이런식이었다.

가끔식 난 엄마,아부지의 싸움에 끼어들곤 했다.

"아부지, 그냥 엄마한테 져주면 안되요? 이래저래 따져보면 결국엔 아부지 잘못이었던거잖아요."

난 아부지가 그냥 엄마에게 져주며 살았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다. 

남편이 아내에게 이겨서 뭐하나 싶었다. 



그래서 그런건가, 타인이 바라보는 내 모습이 공처가이기를 바랬다.

아내와의 에피소드를 타인에게 말할 때, 앞뒤 다 자르고 웃음기 섞인 약간의 유머와 함게 짤막하게 전달한다.

짤막한 말은 아내에게 쥐어잡혀 사는 남편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는 지도 모르고 그렇게 나는 농을 건넨다.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아내는 큰 관심은 없지만, 그렇게 왜곡되어 전달되는 것이 싫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남편을 쥐어잡고 사는 아내가 아닌 남편에게 사랑받는 아내이기를 원하고 있는것이 아닐까.

공처가 남편이 아닌, 존중과 배려가 있는 애처가 남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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