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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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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Jul 22. 2019

9회 말 투 아웃 역전 한 방

9회 말 투아웃 역전 한 방은 스크린 야구에서만 즐기려고요


 회식을 했어요. 족발을 맛나게 먹고 스크린 야구를 하러 갔죠. 3명씩 한 팀을 꾸려 두산 대 기아, 기아 대 두산, 한국시리즈를 우리 마음대로 개최했어요. 스크린 야구가 안타 치기가 꽤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팀원들이 회를 거듭할수록 감을 잡기 시작하더니 안타를 쏟아내기 시작했어요. 저희가 7 대 4로 앞서가며 9회 초 상대팀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었어요. 갑자기 안타를 몰아치는 거예요. 순식간에 7 대 6으로 한 점 차로 좁혀졌고 타석에 한 선수가 올라섰어요. 9회 말 투아웃 만루 상황이었고요. 그런데, 저희 팀은 우리가 이겼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이 분은 10타수 무안타였거든요. 스크린 야구를 처음 해보셔서 그런지 아직 감을 못 잡으신 듯했어요. 이윽고 투아웃 투 스트라이크까지 왔어요. 볼이 던져지고 

"딱!"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어요. 경기장은 축제 분위기였어요. 안타를 쳤으니까요. 11타수에 딱 한번 안타 쳤는데, 그게 9회 말 투아웃 마지막 공격에서 동점 타인 거예요. 모두가 똑같은 말을 쏟아냈어요.

"인생 한방이라니까"
                   
 오늘만큼은 맞아요. 인생은 한방이네요. 줄 곧 무안타였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의 안타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으니까 말이에요. 현실 속에서도 저는 종종 한방을 꿈꾸어요. 한방에 얻는 돈을 꿈꾸는 거죠. 그러다가도 문득 이런 질문이 들고는 해요.

'내가 평생 동안 일해도 얻지 못한 많은 돈을 한방에 얻게 되면 
내가 평생 동안 누리게 될 행복도 한방에 얻을 수 있는 걸까?'


 뜬구름 잡는 얘기 좀 해볼까 해요. 누가 만든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행복이라는 감정엔 배려가 있는 것 같아요. 헬조선이라는 그림자에 가려지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가치를 따질 수 없으며 비교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어렸을 때 엄청 지랄을 떨면 나이 들어서 정신 차리고 덜 지랄을 떤다는 뭐 증명은 안된 그런 법칙이요. 

 

이처럼 행복에도 총량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어요. 지금 내가 엄청 불행하더라도 어차피 행복 총량은 정해져 있으니 나중에 모두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뭐 그런 거요. 그런데, 얼마 되지 않은 지난 삶을 돌이켜보면 딱히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삶을 일직선상에 놓는다면 그 행복들이 선위에 골고루 퍼뜨려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수십 년 동안 주어진 행복을 누리지 못하다가 9회 말 투아웃 동점 안타 한방으로 지금껏 누리지 못한 그 행복을 한꺼번에 다 얻을 순 없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 말이에요. 금수저도 흙 수저도 바보도 천재도 추남, 추녀도 미남, 미녀도 행복 총량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농담처럼 헬이라 불리는 한국에서 삶을 일구고 있는 모든 이들의 행복 총량은 같을 것이라고 혹은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요. 만약 그렇다면 최저시급 속에서도 월급 180여만 원 속에서도 주 7일 야근 속에서조차도 숨어있는 행복 총량의 일부를 찾아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떠오를 때가 있어요. 진짜 뜬구름 잡는 얘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럴 거야, 그럴 거야, 그럴 거야라고 생각하며 찾아보려고요. 뭐 다른 혜안이 있으신 분 있으면 알려주세요. 맛난 거 대접해 드릴게요.



 돈과 행복의 관계를 무시할 순 없지만 돈이 행복을 끌어당길 가능성보단 행복이 돈을 끌어당길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9회 말 투아웃 역전 한 방은 스크린 야구에서만 즐기기로 했어요. 아직 40년도 더 남은 인생을 9회 말 역전 한방을 기다리며 지금 얻을 수 있는 쉽고 자그마한 기쁨들을 놓치고 싶지는 않거든요.



Q. 왜 퇴사 록인가요? 

A. 퇴사 후,  저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조금 바뀌었습니다.  제 삶은 2015년 10월 1일의 퇴사 전, 후로 나뉠 수 있을 만큼 일상을 대하는 시선 또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귀촌 후 결이고운가(전원주택)를 짓고, 다시 입사를 했지만, 퇴사 록이라는 이름으로 퇴사 이후의 기록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마음만은 여전히 퇴사 중이며 당시의  마음가짐으로 지금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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