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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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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노 Aug 12. 2020

동백이가 아니고 구백이

그렇게 나는 구백이가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조금씩 남았을 거 같은데..."


다락 침대에 누워 일기를 쓰던 아내가 말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더 이상 감출 수 없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5년 전 나는 퇴사를 했다. 이직을 위한 퇴사가 아니었다. 특별한 이직 계획 없이 모든 일을 중단했다. 퇴사와 동시에 69일간의 유럽여행을 떠났고 다시 직장으로 방향을 돌린 건 10개월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일하라고 돈 벌어오라고 재촉하지 않는 아내와 함께 보낸 꿈같은 10개월이었다. 


당시  아내와 함께하는 동안 자산관리는 내가 해왔고 가족여행도 10개월의 생활비도 퇴직금으로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4년도 안되는 재직기간 동안 퇴직금은 생각만큼 충분하지 않았다. 퇴직금 안에서 장기 유럽여행 계획을 철저하게 세웠다고 생각했지만 생각 외로 새는 돈이 있었고 여행 후에도 아껴가며 생활했지만 퇴직금은 이 모든 걸 버텨내지 못했다.





아내는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되는 사람이었다. 말을 했어야 했다. 반면에 종지 그릇의 크기를 가진 나는 아내를 통해 "돈이 떨어졌으니 직장을 구해야 하지 않아?"라는 말을 들을까 두려웠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외벌이로서 경제적 가장으로서 잘 해왔다는 개똥같은 자존심에 흠집이 갈까 두려웠던 걸까. 아내에게는 경제적인 어려움 자체보다 함께 헤쳐나가지 않으려 했던 나의 결정에, 나의 거짓말에 더 상처받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아내와 상의 없이 육백만 원의 대출을 덜컥 받았었다. 이때쯤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게다가 직장으로 돌아가면 육백만 원 정도는 아내 모르게 금방 갚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옛말에 말이야, 옛말에 그랬어.." 20대 시절, 누가 옛말을 들춰가며 나에게 빗대어 얘기할 때면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옛 시대와 지금 시대는 확연히 다르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그들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듣도록 했다. 바보 멍청이처럼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다'라는 말을 40대가 되고 나서야 자주 인용하고는 한다. 다시 옛말을 빌려 내 상황에 빗대어 보면 이 말이 딱이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고 했다."





2년 전, 아내의 자동차가 필요했다. 전원주택에 살 때는 부부가 하루 종일 붙어있지 않는 한, 자동차 한 대로는 사는 것이 매우 불편하다. 마을의 어떤 집은 이사 올 적만 해도 차를 사용하지 않겠다 장담했는데, 어느 날부터 주차장을 보니 두 대의 차가 떡하니 자리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아내는 경차가 좋다고 했지만 남에게 보이는 것에 무심하지 않았던 나는 조금 더 큰 차를 갖고 싶었다. 경차를 위해 준비해놓은 돈에서 삼백만 원이 더 필요했다. 아내에게는 삼백만 원이 더 있다는 거짓말과 함께 상의 없이 두 번째 대출을 저질러 버렸다. 이렇게 나는 아내가 모르는 대출 구백만 원을 옆구리에 차게 되었다. 




외벌이로 장거리 출퇴근을 했지만 담보대출 상환하고 생활비 쓰고 매월 몇십만 원이 남았다. (이때 아내는 생활비를 아껴 적금까지 들고 있었는데 나는 이런 개빵꾸똥꾸같은 짓을...)  아내는 이 돈을 추가 상환에 쓰고 있는 것으로 알았지만, 나는 옆구리에 차고 있던 구백만 원을 빨리 상환하고 싶은 마음에 남는 돈이 있을 때마다 몇십만 원씩을 주식에 넣어버렸다. 아주 오래전부터 주식을 조금씩 해오며 살림에 보탬이 된 적도 많았기에 욕심부리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빨리 상환하고 싶은 마음은 과욕을 불렀고 코로나가 정점에 달하던 때에 그 돈은 말로만 듣던 '반 토막'이 되어 돌아왔다. 다시 한번 옛말에 빗대자면 혹을 떼려다 혹 하나 더 붙인 격이었다. 






첫 번째 대책 없는 퇴사 후, 5년이 흘렀고 나는 다시 퇴사를 결정했다. 옆구리에 아내가 모르는 구백을 찬 채로...



장마가 비아그라를 먹었나, 사그라들 줄 모르고 미친 듯이 비가 내리던 어느 날 밤, 다락에서 일기를 쓰던 아내가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조금은 남았을 거 같은데... 오빠, 진짜 남은 돈 어디다 썼어?"



아내에게 퇴직금을 전달할 때 말하려고 했지만,  다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구백만 원의 대출이 있어" 



대나무숲에서 "나!!! 너 모르는!! 구백만 원!!! 대출 있어!!!"라고 털어놓은 듯, 가슴 한켠 묵직했던 돌덩어리가 아래로 훅 내려갔다. 아내의 반응이 오기도 전에 느꼈던 이상한 쾌감. 천주교인들이 고해성사 후 느낌이 이런 것일까.



아내는 생각만큼  화내지 않았다. (쪙쓰 쵝오! 넓은 아량! 장군감이야!) 


"아오, 오빠, 회사 그만두면 내 월급으로 오빠 퇴직금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계산 다 해놓았는데,  다시 계산해야 되잖아!"

 "그래도 감춘 것이 바람피운 게 아니어서 다행이네, 바람만 안 피우면 괜찮아."



아내의 품에 푹 파묻혀, 


"거짓말해서 미안해, 미안해," 


연신 사과했다.



아내는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이제 오빠는 구백이야, 동백이가 아니라 구백이. 평생 써먹어야지"

.


.

.

이렇게 나는 구백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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