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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바비앙 Jun 16. 2020

중년으로 가는 우리

여자 니이 마흔


 남편을 처음 만난 건 서른 살의 가을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연애를 한 번도 안 해 본 여자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못 해 본 여자였다. 연애를 못 해 봤다고 감정도 없는 건 아니었다. 연애하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고, 때론 자랑하는 친구들이 얄미운 적도 있었다. 그랬던 내게도 남자 친구가 생겼으니 하늘을 날아갈 것 같다는 기분이 그런 것일까? 세상의 모든 것이 예뻐 보였고, 매일 밤늦게까지 전화통화하느라 새벽 1시~2시를 넘기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렸고, 그 당시 일이 너무 바빠 주말 출근이 일상이었던 남자 친구를 만나러 회사 앞에 가서 몇 시간씩 기다리면서도 행복했었다.     

생각해 보면 결혼 전 내가 남편을 더 좋아했었던 것 같다. 받기보다는 늘 뭘 해 줄까 고민했었고, 생일, 기념일 이런 것들도 성격 급한 내가 더 먼저 설치면서 챙겨줬다. 나도 챙겨줄 누군가가 있고, 가족들 외에 내 생각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자체로 좋았기 때문에 남자 친구가 먼저 챙기지 않는다고 해서 섭섭한 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좋아서 결혼했는데 살면서 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쏙쏙 나타나면서 자꾸 싸우게 된다. 우리의 부부싸움은 일방적으로 나만 와르르 쏟아내는 격이다. 화를 참는 건지 모른 척하는 건지 남편은 침묵으로 일관할 때가 많았다. 벽에다 대고 나만 화를 내는 것 같다는 생각에 더 약이 올랐다. 혼자서 씩씩거리다가 다른 방으로 들어가 버리면 한참 있다가 남편이 빼꼼히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방금 전 불같이 화를 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질 때가 많다. 평소 곰탱이 인 남편은 이럴 때만은 여우 같은 행동을 하는 듯하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지 우리의 싸움은 늘 이런 식으로 시작과 끝을 반복하면서 현실 부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보다 두 살이 많은 남편은 대한민국 평범한 회사원이다. 내가 고민하는 것처럼 남편도 마흔의 중반이 되고 나니 슬슬 퇴사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것 같았다. 안 그러던 사람이 주말에 산을 다니고, 아침에 일어나면 나가기 바빴던 사람이 일찍 일어나 명상을 하고, 책을 읽고 출근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는 남편의 그런 행동이 그저 바람직한 생활습관을 갖으려고 시도하는 것이라 여겼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남편의 행동은 불안을 잠재우려는 마인드 컨드롤의 행동이었고, 다음을 찾기 위해 혼자 애쓰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오랜 고민 끝에 남편은 어릴 적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꿈을 기억해 냈고, 현재 하는 일이 컴퓨터에 관련된 이기에 그림과 IT기술을 접목해 앱 만들기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회사에서 먼저 나가라고 등 떠밀기 전에 본인이 스스로 박차고 나올 수 있을 그날을 위해 출근 전, 퇴근 후를 열심히 보내고 있다.   

  






어떤 사람은 평생 외길을 갈 수도 있을 테고, 어떤 사람은 나처럼 중년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한 번씩 인생의 전환점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나만 혼자 그 외로운 길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도 그랬고, 또 다른 누군가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동안의 익숙함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찌 순탄하기만 하겠는가... 더 나은 나의 미래를 위해 지금 이 고통의 순간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나아가 즐길 수 있는 여유와 배짱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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