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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커피

by 백수광부

어린 시절, 식사가 끝나면 다과 시간을 가졌다. 다과 시간에 어른들은 검은 음료를 즐겨 마셨다.

당시 내가 가끔 마시던 검은 음료는 콜라였지만 어른들이 마시던 음료는 콜라가 아니었다. 탄산이 들어가지 않은 검은 음료의 이름은 커피다. 한번은 어른들의 모습을 따라 해보고 싶었는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적이 있다. 뱉지는 않았지만, 너무 쓴맛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던 기억이 난다.


대체 이 쓴 음료를 왜 마시는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마시지는 않았지만, 커피가 필요할 때가 있었다. 아직도 판매 중인 롯데제과의 빠다코코낫을 먹을 때다.

빠다코코낫.jpg 롯데제과의 빠다코코낫

빠다코코낫은 그 자체로 달고 맛있는 과자다. 바삭한 비스킷 형태의 과자로 커피와 같이 먹을 때 궁합이 좋았다.

달기 그지없는 과자를 커피에 적셔 먹으면 코팅된 표면의 설탕과 버터가 섞인 코코넛이 어우러진 맛이 부드럽게 입안에서 춤을 추었다.

커피는 빠다코코낫에 찍어 먹기 위한 소스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대학생이 되어, 친구 N과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가을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극이 시작하기 전까지 시간이 꽤 남아있었기에 건물 안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했다.

아마 당시 보았던 소설이나 영화의 등장인물이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는지 그날은 평소와는 다른 음료인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N은 에스프레소가 아닌 다른 음료를 주문했다.

음료가 나왔다. 에스프레소 잔의 크기를 보고 매우 당황한 기억이 선명하다. 크기가 생각보다 작았기 때문이다. 잔의 크기가 그 정도로 작은 음료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리고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순간 예상 이상의 쓴맛에 어린 시절 커피를 마셨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보다 더 쓴맛이었다.

마실 수 없을 정도의 쓴맛. 결국 N이 물을 가져와 에스프레소와 섞어 아메리카노를 만들어주었다. 그제야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N이 말했다.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으면 어른'이라고.

나는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없었으니 그 기준에서는 어른이 아니었던 셈이다.




나는 커피를 언제부터 즐겨 마셨을까.

대학로의 오래된 카페 ⟨학림다방⟩을 방문한 이후부터다.

학림다방.jpg 학림다방

1956년 개업한 ⟨학림다방⟩은 대학로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로 빈티지한 분위기를 간직한 장소다. 김지하, 황지우, 김민기, 김승옥 등 예술인들의 단골 가게로도 유명하다.

⟨별에서 온 그대⟩와 ⟨응답하라 1988⟩ 등 여러 드라마의 촬영지로 알려지고 복고풍의 유행으로 MZ세대도 많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카페의 유명세에 이끌려 호기심에 찾아간 그곳에서 학림 블렌드라는 커피를 주문했다. 커피란 마냥 쓰거나 다소 느끼하고 단맛이 다소 섞인 커피믹스밖에 몰랐기 때문에 새로 접한 드립커피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종래 맛보았던 커피들과 달리 덜 쓰고 깔끔한 맛이었다.


학림 블렌드로 커피의 거부감이 사라진 후부터는 핸드 드립이나 에스프레소 바리에이션 커피도 가리지 않게 됐다. 스타벅스를 처음 갔을 때 복잡한 이름의 메뉴를 주문하느라 진땀을 흘렸던 시절이 엊그제만 같이 능숙하게 커피를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어느새 커피를 매일 마시게 되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쓴 음료를 왜 마시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더 이상 아니었다.


스타벅스를 비롯해 프랜차이즈 카페가 늘어나 동네에서도 커피를 쉽게 마실 수 있었다. 카페들은 때로는 간판을 바꾸기도 했다. 스페셜티를 취급하는 카페들 또한 늘어났다. 언젠가 홍대에 갔을 때는 거리의 그 많은 카페가 모두 커피 또는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어 놀란 적도 있다. 일터 근처의 건물에서는 한 층에서만 다섯 가게가 커피를 파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커피를 끊임없이 마셨다.


집에서 직접 원두를 갈고, 내리거나, 직접 로스팅을 하는 지인들도 늘어났다. 이제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쉬울 지경이었다. 나 역시 가끔이라도 집에서 핸드드립을 하기 위해 원두 분쇄기와 드리퍼를 구매했다. 카페에서 커피가 마음에 들면 원두를 구매해 집에서 내려 마시고는 했다. 어떤 가게의 커피는 너무 맛이 없어 내가 집에서 내려 마시는 것이 나았다.




몇 년 전 커피를 즐겨 마시게 된 친구들과 합정에 있는 유명하다는 카페에 찾아갔다. 빨리 마시고 나가라는 듯한 좁은 구조였다. 오너는 커피를 팔아 생업을 유지한다기보다 커피가 좋아 취미로 영업하는 인상의 소유자였다.

자리에 앉아 여러 싱글 오리진의 원두가 적혀있는 메뉴를 펼쳐보았다. 그중 몇몇은 에스프레소로 마시길 권장하는 원두였다. 카페의 오너 역시 에스프레소로 마시길 권했다.


대학 시절 맛본 쓴맛의 고통이 기억에 남아있었지만 주저하지 않고 에스프레소 잔을 들이켰다. 오랜 시간 섭취한 카페인의 힘 덕분에 왠지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달콤하고 쌉싸름한 에스프레소의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맛있었다. 에스프레소가 맛있다는 뜻밖의 사실에 눈이 휘둥그레진 나와 친구는 또 다른 원두의 에스프레소를 주문해 오너의 권유대로 설탕을 약간 첨부해보았다.

나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그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에스프레소 때문이다.

그 강렬한 맛은 잊을 수 없었다. 불면증의 이유가 에스프레소의 맛 때문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이유가 달랐다. 카페인 때문이다.

에스프레소를 마시게 되었지만 이제 몸은 예전의 몸이 아니다.

소년은 늙기 쉽고, 어른이 되기는 어렵다.

다음 날 아침, 단톡방은 커피로 인한 불면증이 화제였다. 이제는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거나 커피를 끊었다는 벗들의 소식은 서글프기만 했다.

에스프레소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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