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키 겐이치의《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나쓰메 소세키가 'I Love You'를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번역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소세키가 영어 교사로 재직할 당시, 한 학생이 ‘I Love you’를 ‘너를 사랑한다’라고 번역하자 소세키는 ‘일본인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라며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제안했다는 이야기다.
사랑Love는 너무 직접적이며, 연애라는 개념도 형성되기 시작한 근대 초기이기에 ‘달이 아름답네요’라는 간접적인 화법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쪽이 더 적절하다는 말이다.
달을 올려다보며 고백한다는 일화는 낭만적이지만 실제로 소세키가 이러한 발언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른 발언이 왜곡되었다는 말도 있다.
소세키의 일화에 감화되어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고백해도 잘못된 상대를 만나면 그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다. MBTI의 T 유형을 만난다면 달이 아름답지 않다거나 대체 달이 어딨냐는 답변이 돌아올 가능성도 높다.
핑크빛으로 벅차오른 감정이 사그라들어 침대에서 이불킥을 하거나 어색한 침묵 끝에 올바른 말을 골라 다시 고백하는 민망한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말과 그 의미에 맞는 올바른 용법이야말로 더없이 중요하다.
일본에서는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의 연애의 뜻풀이도 꽤 유명하다. 소세키의 일화처럼 진위가 불확실하지는 않고 출처가 확실하다. 낭만적이지는 않다.
연애(恋愛) 특정한 이성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고 둘만이 함께 있고 싶으며 가능하다면 합체하고 싶은 생각을 갖지만 평소에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무척 마음이 괴로운(또는 가끔 이루어져 환희하는) 상태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제3판 (일본어 사전)
일본에서 가장 잘 팔리는 국어사전인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은 직설적이고 거친 ‘합체’란 단어가 있는 뜻풀이로 유명해졌다.
다른 사전은 어떨까. 일본어 사전과 국어사전에서 연애라는 말을 찾아보자.
연애(恋愛) 남녀 사이의 그리워하는 애정(남녀 사이에 그리워하는 애정이 작용하는 것). 사랑(恋)
『산세이도 국어사전』 제3판 (일본어 사전)
연애(戀愛) 성적인 매력에 이끌려 서로 좋아하여 사귐.
『표준국어대사전』 (국어사전)
연애(戀愛) 상대방을 서로 애틋하게 사랑하여 사귐.
『고려대한국어대사전』 (국어사전)
사전이라면 뜻풀이도 같지 않냐고 얼핏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연애라는 단어 하나도, 사전마다 뜻풀이가 이렇게 다르다.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는 두 일본어 사전, 즉 『산세이도 국어사전』 과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을 만든 ‘야마다 선생’, 야마다 다다오와 ‘겐보 선생’ 겐보 히데토시를 다룬 이야기다.
이 책은 2013년 4월 29일 방송된 NHK-BS 프로그램 〈겐보 선생과 야마다 선생 – 사전에 인생을 바친 두 남자〉라는 다큐멘터리에 새로운 증언과 검증을 더했다.
그러하기에 다큐멘터리와 비슷한 구성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러한 구성 덕분에 딱딱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독자의 흥미를 잃지 않는다.
치열한 자료 조사로 발견한 단어와 그 뜻풀이, 용례마저 이야기의 양념이 되어 적절하게 기능한다.
뜻풀이와 용례를 활용하는 솜씨는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가령 야마다 선생의 의지를 담은 ~려 하다んとす가 있다.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의 변화를 다루면서도 ~려 하다んとす의 용례로 편찬자들의 변화하지 않는 신념을 말한다. 마지막 페이지에 실리는 ~려 하다んとす의 용례는 초판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려 하다んとす “우리 일동은 현대어 사전의 규범이 되려는 포부를 갖고 이 책을 엮었다. 바라건대 독자여, 진심을 헤아려주기를.”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초판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中
겐보 선생과 야마다 선생은 『메이카이 국어사전』을 같이 만든 동업자였다.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사전을 만든 사람들이다.
다른 취미도 없이 일에만 매달려 말과 뜻풀이, 용례를 50년간 찾고 수집해 용례 카드만 145만 개 만든 겐보 선생은 말할 것도 없고, 앞서 소개한 연애처럼 독특한 뜻풀이로 유명한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을 만든 야마다 선생도 말에 미친 비범한 사람이었다.
『메이카이 국어사전』을 같이 만든 두 사람은 말과 좋은 사전에 관한 생각이 서로 다르기에 결별이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결국 1월 9일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결별해 『산세이도 국어사전』과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을 만드는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저자는 평생을 사전에 바친 두 사람의 행보를 쫓으며 두 사람의 관계와 사전의 용례 변화에 주목한다. 1월 9일 일어난 사건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또한 녹음과 관련인들의 증언, 용례로 진실을 쫓는다.
두 사람의 결별은 안타깝지만 철학이 확고한 두 사전의 발전은 어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어휘의 풍섬함이야말로 여러 사전이 필요한 이유다.
두 편찬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이야기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가 갖는 중요성을 일깨워주면서 동시에 사전에 실린 단어 하나하나가 얼마나 깊은 고민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졌는지를 흥미롭고 의미 있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