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의 《바움가트너》
수십 년 동안 글을 썼다.
동료 중에는 나이가 더 들기 전 펜을 내려놓은 이도 있다.
나이가 너무 들어 자신이 죽었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필생의 역작도 썼다.
명예도 얻었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다.
펜을 내려놔도 뭐라 할 사람은 없고, 과거를 안주 삼는 삶을 택할 수 있지만 그래도 쓴다.
그리고 암이 찾아온다.
여생을 편히 즐길까 아니면 그래도 앉아서 펜을 들어 싸워나갈까.
기억과 언어가 흐릿해지는 작가는 어떤 마음인가.
문학을 믿고 언제나 펜을 들고 다니던 작가 폴 오스터는 2024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특별한 작가였다.
《뉴욕 3부작》으로 세계에 그 이름을 널리 떨쳤고, 데뷔작부터 유작에 이르기까지 국내에 번역이 된 몇 안 되는 작가다.
그가 암을 선고받고 책상에 앉아 쓴 마지막 노래가 《바움가트너》다.
독일어로 정원사의 뜻을 가진 성씨의 S. T 바움가트너는 운수 나쁜 아침을 맞이했다.
그날은 다른 날과는 달랐다.
책을 찾으러 거실로 향하다 부엌에서 타는 냄새를 맡고 무심결에 냄비를 맨손으로 잡아 화상을 입었다. 약속했는지도 몰랐던 검침원의 방문 지연 전화가 걸려 오고, 가사 도우미 플로세스 부인의 남편이 작업하다 손가락이 잘려 병원에 갔다는 소식을 로지타가 전해주었다. 여자 아이의 공황을 가라앉히기 위한 10분의 통화를 마치니 에드라는 검침원이 도착한다. 검침원에게 계량기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 지하실로 내려가다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운수 나쁜 날이다.
운수 나쁜 날이라도 아내 애나를 잃은 날에 비할 바는 아니다.
에나에 관한 기억이 떠오르며 바움가트너의 의식은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간다.
그날 오후 신들은 아직 젊은 자아가 왕성한 힘을 내뿜고 있던 아내를 그에게서 탈취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그의 팔다리가 몸에서 뜯겨 나갔다. 네 개 전부, 팔 둘과 다리 두 개가 모두 동시에. 머리와 심장이 그 습격에서 살아남은 것은 그저 삐딱한 마음으로 히죽거리기나 하는 신들이 그에게 그녀 없이 계속 살아가도 좋다는 의아스러운 권리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인간 그루터기, 자신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었던 반쪽을 잃어버리고 반쪽만 남은 사람인데, 그래, 사라진 팔다리는 아직 그대로이고, 아직 아프다.
《바움가트너》 中
10 년 전 아내를 잃었음에도 바움가트너는 여전히 그녀가 그립다. 일주일에 두세 번 책을 배달해주 는 몰리라는 UPS 직원에게서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고 새로운 연인인 주디스도 아내와의 인연 덕에 만나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바움가트너는 그녀의 얼굴에 가상의 마이크를 들이대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미스 블룸, 경제학자와 사회학자 대부분은 미스 블룸의 이 새롭고 반(半)프롤레타리아적인 삶을 가속화된 사회적 하강 이동의 극단적 예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 한말씀? 그러자 애나는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미스터 바움가트너. 내가 그 교수들에게 할 말은 이것뿐입니다. 니들이 지금까지 본 건 아무 것도 아니야, 이것들아.
같은 서적 中
지적인 농담, 그리고 유머의 코드가 맞는 파트너를 찾기란 쉽지 않다.
자유와 자기실현에도 서로는 방해되지 않았다.
바움가트너에게 애나와의 결혼 생활이란 아름다웠고 잊고 싶은 기억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 상실이 아프다.
주디스가 바움가트너의 청혼을 거부한 이유도 애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주디스에게 결혼은 자유가 아닌 속박이었다.
바움가트너에게 결혼은 행복한 생활이었다.
그는 주디스에게서 애나의 모습을 찾으려 했고 주디스는 그걸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그러니 청혼 거부는 당연하다.
외로움은 사람을 죽인다는 바움가트너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삶은 타인과 관계 맺음의 연속이다.
바움가트너의 의식의 흐름은 이 관계 맺음에 따라 흘러간다.
40 년을 함께 한 아내 애나, 연인 주디스뿐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등 소중한 이들을 추억하고, 새로운 인연들과 연결된다.
바움가트너가 죽지 못하는 한 애나 없이 살아갈 길을 찾아야 했다.
삶은 계속 흐르고 예측할 수 없다.
연인을 잃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도 한다.
빛나던 연인의 재주를 찬탄하며 그녀를 그리워한다.
선량한 검침원과 나이를 초월한 친구가 되어 부자 관계에 대해 조언하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날도 온다.
어쩌면 말 같지도 않은 유머가 통하는 이성을 다시 만날 수도 있다.
이 모든 날은 타인과 연결되어야 가능하다. 두드리고 다가가야 한다.
죽음이 다가오는 날까지도 우리를 견디게 하는 힘은 타인과 맺는 관계다.
문학을 믿고 죽는 날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작가 폴 오스터는 마지막까지 변화의 가능성과 희망을 노래했다.
그게 상상력의 힘이야, 그는 속으로 말한다. 아니, 그냥 간단하게, 꿈의 힘. 사람이 허구의 작품에서 전개되는 가상의 사건으로 인해 변화를 겪을 수 있듯이 바움가트너는 꿈에서 자신에게 스스로 해준 이야기로 인해 변화를 겪었다. 따라서 이제 창 없던 방에 창이 생겼다면, 누가 알랴,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창살도 사라져 마침내 바깥공기 속으로 기어 나갈 수 있는 날이 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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