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하루
이날 새벽, 리마 공항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한국에서 콜롬비아로 날아갈 때 공항에서 경유를 11시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보다 더 피곤한 느낌이었다. 새벽에 깊이 잠들지 못하고 꾸벅꾸벅 지출을 정리하고 일기를 쓰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침 7시 즈음 쿠스코에 도착했다.
여행을 준비할 시기에 이것 저것 정보를 찾아보면서 마추픽추가 쿠스코 도시 남부 쪽에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러고 나서 떠오른 것은 쿠스코의 '잉카댄스'라는 음악이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게시글들에 배경음악이 깔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잉카댄스' 이 음악도 자주 쓰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음악을 들을 때면 항상 즐겁고 재밌는 기분이어서 일부러 찾아 듣기도 했다. (Youtube 동영상 보기) 그 쿠스코가 내가 가는 곳이었다니! 설렘이 가득해졌다.
쿠스코 공항에 내려서 미리 예약해둔 호스텔로 택시를 탔다. J와는 호스텔이 달라 다음을 기약하며 공항에서 헤어졌다. 쿠스코는 내가 여행을 하면서 제일 매력적인 장소 중 하나였는데 관광지이면서도 여유가 넘치는 곳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호스텔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쿠스코는 해발 약 3,400m에 달하는 고산 지대라 내 체력을 의심할 정도로 빠르게 숨이 차 왔다. 짐은 무겁고 고지대인 지역 특성상 숨은 가빠오고 호스텔은 어딨는지 모르겠다.
근처 레스토랑에서 오믈렛과 커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16 솔), 호스텔에 도착했다. 호스텔의 이름은 Intro Hostel. 공용 욕실인 것만을 제외하면 괜찮은 곳이다. 다른 여행객들과도 어울릴 수 있고 쿠스코의 분위기가 잔뜩 묻어있다. 숙소의 가운데에는 식사 공간과 휴게 공간이 위치해 있어 맥주 한 캔과 함께 휴식을 취하기 딱이었다. 아르마스 광장까지 거리는 가깝다고 하긴 어려운데 그래도 15분 정도면 충분히 걸어 도착한다. 데스크에서 각종 투어 정보, 팁 등을 얻을 수 있고 직원들도 친절한 편이다. 숙박비는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해두었는데 1박에 18달러였다.
그런데 여행에 있어 우려했던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D의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열도 있는 같고 몸살 기운도 있는 것 같았다. 전날 무리하게 공항 노숙을 하고 고산 증세가 겹쳤기 때문이리라.
원래 이 날의 계획은 크게 두 가지였다. 쿠스코 시내에 있는 볼리비아 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발급받는 것, 그리고 투어 에이젼시에 가서 어떻게 투어를 할 지 결정하는 것. 이 두 개가 목적이었는데 억지로 진행해서 몸을 악화시킬 필요는 없었다. 하루를 쉬는 날로 두기로 하고 D는 휴식을 취하러 방으로 들어갔다. 여행 내내 주로 먼저 대화를 이끌어주던 사람이었는데 조용한 것을 보니 많이 힘들어 보였다. 나는 바깥에 잠시 앉아서 무엇을 할지 생각했다. 방에서 카메라를 꺼내와 터벅터벅 거리로 나왔다.
처음으로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를 보았던 느낌을 잊지 못한다. 좁은 골목길을 걸어 걸어 나가니 탁 트인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광장이 보인다. 그리고 파란 하늘이 함께 나머지를 채운다. 사람들은 오후의 고즈넉한 시간을 각자의 방법으로 보내고 있었고 날씨는 말도 안되게 시원했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여기에 와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이 때도 그랬다. 생각에 잠기니 흘러 흘러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너무 신기했고 모두에게 감사했다.
아르마스 광장의 두 면은 교회가 채우고 있고 나머지 두 면은 낮은 상가 건물이 줄지어 있다. 관광 기념품, 옷 소품 가게, 투어 에이젼시들이 안에 들어가 있다. 그중에 두어 곳을 들어가 투어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간략하게 설명을 듣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D는 일어나 있었는데, 자기를 버리고 혼자 놀러 나갔다는 억울한 꾸지람을 들었다. 그래도 몸이 많이 나아진 것 같아 다행이었다. 저녁 시간이 다가와 저녁을 먹으러 다시 거리로 나왔다. 한 투어 에이젼시의 아저씨가 추천해주신 레스토랑을 찾아 갔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걸어서 6분 정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름은 치챠(Chicha) 레스토랑, 아마 여행 중 방문했던 레스토랑 중 가장 분위기 있고 고급스러운 곳 일 것이다.
치챠론(Chicharrón)과 세비체(Ceviche)를 주문했다. 두 개 모두 내가 남미에서 좋아하던 음식이다. 치챠론은 고기나 생선을 튀긴 것을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통삽겹을 칼집을 내 기름에 튀겨서 내온다. 기름기 많은 삼겹살을 또다시 기름에 튀긴다니! 처음에는 식겁했지만 나중에는 으레 주문해서 시켜먹곤 했다.
세비체는 남미식 해산물 샐러드라고 볼 수 있다. 정말 정말 시다. 다양한 해산물을 레몬즙을 베이스로 하고 고수를 듬뿍 넣은 소스에 절여두고 각종 야채와 함께 곁들여 나온다. 남미에 와서 세비체를 먹어보니 기억이 났다. 한국에서 페루 레스토랑에 방문해 세비체를 먹었었다. 그 때는 무슨 맛으로 먹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는데 이 또한 자주 먹다 보니 착착 감기는 감칠 맛이 나중에 또 생각나게 하는 그런 음식이었다.
치챠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치챠론은 지금까지 먹었던 치챠론 중에 가장 부드러웠고 세비체 또한 정성이 가득했다. 분위기 있는 곳에서 먹는 느낌 또한 색달라 좋았다.
아르마스 광장의 밤은 낮만큼 아름다웠는데, 다음날에 다시 제대로 찾아오기로 했다. 골목길을 굽이굽이 걸어 호스텔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