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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슬 Apr 06. 2019

회사에서 '네' 하지 않기

 현재 내가 속해 있는 마케팅 팀에는 외국인 팀원도 더러 있다. 지금 하는 일이 재밌는 이유 중에 하나는 유럽, 미주 대륙을 넘나 들어 다양한 팀원들과 함께 일한다는 점이다. 같이 일을 하다 보면 각자 가진 성격과 일하는 스타일을 엿보는 것이 참 재밌다


 온라인 상에서 다같이 회의를 하는 어느 날, 매니저가 유럽에 있는 팀원에게 한 가지 요청을 했다. 미팅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그 팀원이 진행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이를 다른 팀원들과 함께 공유해달라는 요청이었다. 갑자기 훅 들어온 요청이었고 나도 혼자 속으로 '꽤 복잡할 텐데 설명하기 힘들겠네' 하고 동정 어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팀원 역시 당황한 기색이었다. "음..아 그거? 어 .." 하며 10여 초 간을 공백으로 채웠다. 어색한 순간이 지나가고 팀원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음, 아니 알겠어. 나 근데 지금 이거 얘기 못하겠어. 얘기하려고 준비한 적이 없어서 나중에 할게. 지금은 안돼.

 매니저도 잠깐 멈칫했지만 으레 그랬다는 듯 말했다. "그래? 알겠어. 그럼 계속 진행하자."



 그 후 며칠 지나지 않아 회사의 마케팅 총책임자가 새로 부임했다. 이렇게 높은 직책의 채용이 외부에서 이루어진 것은 이례적이었기 때문에 다들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던 상황이었다. 전 지사 마케팅 미팅 시간에 새로 온 분은 자기소개를 했고 다들 귀 기울여 들었다. 전 직장 이력은 매우 흥미로웠고 다들 그 사람의 시간을 함께 돌아보고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줄 아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에는 솔직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나는 여기 있는 마케팅 팀원 중에 가장 신입일 거예요. 나는 적응(onboarding) 기간에 열심히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회사에 대해 배우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부임 후 2달 동안 비즈니스에 대한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겠습니다. 다들 고맙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면 학교를 다닐 때의 이상으로 많은 사람을 보게 된다. 타산지석으로 좋은 것은 가져오고 나쁜 것은 쳐낼 수 있는 것이다. 위의 두 가지 상황은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돌아보게 되었다. 매니저에게 갑작스러운 발표 요청을 받았다면 나는 어영부영 말 더듬으면서 해냈을 것이다. 이직과 같이 새로운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서 모든 것을 시도해보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꽤 충격이었다. 갑작스러운 발표 요청을 받았다면 양해를 구하고 다음 기회에 더 완성도 있는 발표 자리를 마련하면 된다. 새로운 곳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적응 기간이 필요할 테니 무조건 결과를 바로 만들어내기 위해 허겁지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사고이면서 논리적으로 보였다.


아직은 어렵지만, 작은 것부터 차례차례 해보려 한다. 무작정 예스맨이 되어 모든 이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 않고 할 수 없는 것은 노를 외치고 준비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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