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불지 않지만 추웠던 날이었다. 온도가 낮아 스산한 느낌을 주기도 했던 그런 날이었다. 따끈한 국물 하나로 위로받을 수 있던 그런 날.
기대하지 말라고 했지만 식당 문을 들어서기 전부터 많이 설레었다. 방문하기 전에 내가 알고 있던 사전 정보는 이러했다.
동남아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공장 지역 근처라 현지인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이 많은 곳이다. 밤에는 조명이 어두워 위험해 보일 정도로 허름한 곳이지만 낮에는 시내 중심가에선 보이지 않는 작은 골목가일 뿐이었다.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음식 등 다양한 곳의 음식점들이 모여있었다.
그 중에서도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한국인들도 많이 찾아와 먹는 곳이라고 했다. 저녁이 되면 방문객들이 바글바글하여 밖에서 보기만 해도 "아 여긴 믿고 들어갈 수 있겠다 " 하는 곳. 동남아 음식이지만 소주와도 잘 어울려 가끔 친구들하고 방문하는 맛있는 식당이라 했다.
문을 열자 문에 달린 까랑까랑한 종소리가 먼저 반겼다. 동남아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구슬 달린 발도 볼 수 있었다.
11시 30분이라는 조금 이른 시간에 방문하여 손님은 없었다. 그러나 직원들은 분주해 보였다. 뭐하는고 하니 한 테이블 구석에서 2,30명 정도 식사할 수 있을 법한 음식을 포장하고 있다. 스티로폼 깊은 용기에는 비닐봉지에 담긴 국물 요리가, 넓고 얄팍한 용기에는 볶음밥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기대감을 한층 더 높여줄 수 있는 광경이었다. 진정한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기대감.
메뉴판은 한국인들을 위한 번역이 포함된 한 장 짜리 메뉴판과 현지인들을 위한 본격적인 책자 형식의 메뉴판 두 개가 있었다. 10여 분간의 고민 끝에 똠양꿍, 쏨땀, 볶음밥 하나씩을 주문했다.
태국에서 먹어본 첫 똠양꿍 맛은 그저 그랬다. 여행 블로그나 책자에서 보면 흔히 세계 몇 대 진미로 손꼽히곤 하던데 내 기대에 조금 못 미쳤다. 그래서 이번에 먹어볼 똠양꿍이 많이 궁금했다.
이윽고 쏨땀과 볶음밥을 서빙해주고 작은 철 받침대 하나와 초를 가져왔다. 초에 불을 켜주고는 뚝배기 같은 냄비를 가져다주었다. 뽀얀 국물에 빨간 기름이 떠있는 똠양꿍은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오동통하게 들어간 새우도 한 몫했다.
흔히 신 맛이 나는 한국의 국물 요리는 김치찌개가 있는데, 이 곳의 똠양꿍은 정말 맛있게 끓여 낸 김치 찌개를 생각나게 했다. 새우와 다른 해산물들의 감칠맛을 똠양꿍 특유의 시큼한 국물이 극대화시켜주고 있었다. 한 숟갈 떠먹고 감탄하고 또다시 수저를 들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새로운 맛집을 찾았다며 우리는 기분 좋게 식당을 나왔다. 맛있는 곳을 찾으면 함께 찾아가는 보통의 통과 의례였지만 이젠 다시 함께 갈 수 없음을 서로 알고 있었다.
그 똠양꿍은 그 날과 닮아 있었다. 너와 나라는 재료는 시어버린 관계에 적절하게 녹아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서로를 찾았다. 추운 날씨에 위로받을 수 있었던 따뜻하고 시어진 관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