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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슬 Jul 03. 2019

에이번리의 라벤더

노처녀 라벤더는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흰머리가 희끗희끗 보이고 틀림없이 처량하게 지내고 있을 것이라는 앤의 추측은 틀렸다. 똑같이 생각했던 나도 틀렸다


주인공인 앤은 뒤에 e가 들어간 조금 특별한 아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온 '빨간 머리 앤'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많은 이들이 애정을 가졌다.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두 번째 후속작인 에이번리의 앤은 첫 번째 시리즈와는 조금 다르다. 


앤은 약간 자랐다. 여전히 새가 지저귀는 소리, 오솔길에 흩날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지나치게 감탄하곤 하지만 그래도 '빨간 머리 앤'의 앤보다는 점잖아졌다. 그만큼 신경 쓸 것도 많아졌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는 메를린과 어린 쌍둥이를 돌봐야 한다. 학교에서는 교육을 전달하는 자로써 학생들에게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청년들이 주도하는 개선회에도 들어가 마을을 위한 여러 가지 활동들을 진행한다.

그래도 가끔씩 생기는 사고와 앤의 상상력 넘치는 생각들 덕분에 "아, 앤 이구나" 하고 웃음 짓게 한다.

자라난 앤과 동시에 주변에는 다양한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이웃 해리슨 씨와 귀여운 폴 어빙이 그렇다. 라벤더 또한 여기에 나온다. 또 다른 친구 중 한 명인 라벤더는 메아리 오두막에 살고 있는 40대 미혼 여성이다. 필시 깐깐하고 무서울 거라는 앤의 예상은 아름답고 우아한 라벤더를 보여주면서 완전히 빗나갔다.  그러면서 누군가 올 거라는 희망에 티테이블을 잔뜩 차려놓고 무작정 기다리는 모습은 앤과 비슷하기도 했다.

친구 사이가 된 라벤더와 앤은 자신들의 깊은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혼자 지내고 있는 라벤더는 안쓰러워하는 앤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앤, 실제로 가슴이 아프다는 건 책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심하진 않아. 별로 로맨틱한 비유는 아니지만 치통 같은 거랄까. 이따금 고통이 밀려오면 잠을 못 이룰 만큼 힘들지만 그런 사이사이에도 아무 일 없는 듯 인생을 살고 꿈을 꾸고 또 메아리랑 땅콩 캔디를 즐기니까 말이야."

그러면서 현실은 우리를 불행한 채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며 땅콩 캔디를 정말 맛있다고 집어먹는다. 이 부분을 기점으로 나는 라벤더에게 푹 빠져 책을 단번에 마쳤다.


라벤더는 참 멋진 사람이다. 메아리와 땅콩 캔디로 담백하게 게 이야기를 풀어내다니. 가슴 아픈 기억을 안고 가는 사람들에게 위로해 줄 수 있는 몇 마디였다. 고맙기도 했다. 라벤더의 말을 읽고 나자 나만의 메아리와 땅콩 캔디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슬픔에 푹 빠지려고 마음을 먹어도 삶은 우리를 편안하게 해 주려고 애를 써준다고 라벤더는 덧붙였다. 필시 그럴 것이다. 그게 살아가는 것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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