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케이블의 막장 드라마는 나를 제외한 주변인들은 다들 보는 것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보았냐고 흥분하며 어쩜 그럴 수가 있는지에 대해 최소 5분은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충분히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소재에 잔잔한 색감으로 감성을 더했다. 동공이 커지는 인물들의 심리묘사는 나까지 그 상황에 있는 것 같은 이입을 제공한다. 심지어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우리 엄마조차 영화를 보는 것 같다며 혀를 끌끌 차며 애청자가 되었다.
엄마 옆에 앉아서 같이 보려고 했다. 지난 주말에. 가족들이 같이 있는 김에 마라탕을 배달시켰다. 매운 단계는 3단계에 고수와 연근 그리고 소고기 추가. 좋아하던 조합이었다. 상에 펴놓고 시청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시킨 마라탕 3단계는 속이 아플 지경이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충격과 혼돈이 섞인 장면들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누가 누굴 배신하고 뒤통수를 맞고. 누구는 울며 누구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나는 못 견디고 방으로 들어갔다. 너무 매웠다.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시트콤을 틀었다. 보면서 속으로 되짚었다.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나도 남의 이야기인 양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볼 수 있었을까.
시간이 많이 해결해주긴 했다. 사건 직후처럼 엉엉 울지도 않고 내 삶에 집중할 수도 있게 되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의 영향이 컸다. 내 사람들에게 좀 더 의지할 수 있고 잘 표현하게 되었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연애를 하면서 쿵쿵거리는 설렘도 다시 찾아왔다. 업무를 하는데도 성과를 보이면서 보다 재밌게 다니고 있다. 엉망진창이었던 내 궤도가 정상으로 돌아간 것이다. 안정적이고 다행이었다.
한편으론 트라우마를 극복해낼 수 있다고 믿는 편이었다. 마음먹기에 따라, 힘든 지난날은 디뎌낼 새로운 길들로 덮어지게끔 말이다. 실제로 극복한 적도 있었다. 더이상 사람들 앞에서 떨지 않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비판받는 것에 무서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역경이나 힘든 일이 닥치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인지. 난 아직도 주변인들의 치정사 얘기를 들으면 표정 관리가 안된다. 지난 일들이 내 머릿속에 떠오르고 대화는 귓가에 왕왕되는 소리로 변한다. "몰랐던 사람도 이상하네"라는 말이라도 누군가 뱉으면 칼이 되어 가슴에 박힌다. 예전 같으면 가볍게 흘리고 지나갔을 얘기는 하루 종일 빙빙 맴돌았다. 그 당사자들과 나는 함께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다. 그래서일 것이다. 드라마를 끝까지 다 보지 못했던 것은. 영상의 어둡고 채도 낮은 분위기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마라탕은 내가 좋아하는 매운 음식 중 3번째 안에 드는 음식이었다. 친구들과 매운 마라탕으로 유명한 곳을 돌아다니며 평가하곤 했다. 그런데 그날 먹은 마라탕은 아픈 맛이었다. 매운 나머지 끝까지 다 먹지도 못했다. 3단계를 먹고 난 다음날엔 위장약을 처음 사봤다. 아주 데어도 단단히 데었다. 3단계는 이제 나에게 자극적인 음식이 되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다음에는 하얀 마라탕을 먹어보아야겠다. 조금 더 순하고 진한 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