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 산문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작가 장편소설

by 백가장
사는 게 말이야, 영두야. 언젠가는 유턴이 나오게 돼.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 속 이 문장을 나는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영두가 아닌 내게 전하는 위로 같아서다. 오늘도 마치 ‘옮겨다 심은 종려나무'처럼 뿌리를 내리려 애를 썼던 나는 생각한다. 과연 내가 돌아갈 곳은 어디인가.


나는 얼마 전 이직을 했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려 애를 썼다. 실적을 위해 야근을 하고, 어울리기 위해 회식을 했다. 어떤 날은 비바람이 나를 뿌리까지 흔들어 놓기도 했다. 그런 날에는 단내가 난다. 아무래도 단내는 고단한 냄새인가 보다. 그래도 견뎌야만 했다. 나는 가장이니까. 퇴근하고 돌아가는 곳은 작은 원룸이다. 때로는 작은 침대가 관짝 같이 보여서 바닥에서 잠들기도 했다. 굳이 이렇게 이직을 하면서까지 애를 쓰는 이유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도 가족이다. 모니터 옆에서 웃고 있는 아이들, 멋진 풍경들은 한낱 사진이 아니다. 힘들고 지칠 때 내가 ‘돌아가는’ 추억이다. 그 속에서 내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추억은 내게 이렇게 말해준다. 그래, 잘 왔다, 잘 왔어.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어떤 기억은 상처라는 이름으로 나를 괴롭히지만, 또 어떤 기억은 평생을 살아갈 힘들 주기도 한다. 우리는 그걸 ‘추억’이라 부른다. 영두는 낯선 서울에서 떠밀리듯 돌아오지만, 그곳에서 “잘 왔다, 잘 왔어”라는 말을 통해 상처를 회복한다. 문자 할머니 역시 일본인으로서 한국 땅에 남아 평생을 외지인으로 살았지만, 그 삶이 완전히 부정되지만은 않는다. 영두와 할머니는 각자의 추억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둘의 기억은 창경궁과 대온실이라는 공간에 켜켜이 쌓여, 다시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결국, 이해된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단순히 온실을 고치는 이야기가 아니다. 고독과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불완전한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내며 삶을 ‘수리'하는 이야기다. 외래종처럼 뿌리내리지 못한 나무도 결국 그 땅에 흔적을 남기듯,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남기고 있다. 어제라는 공간에서 ’ 옮겨다 심은' 오늘을 살아가며 말이다.


나는 생각했다. 외지인으로 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누구나 겪는 삶의 한 방식이라는 것을, 그리고 고독은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뿌리내리게 만드는 단단한 토양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다시 살아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잘 왔다, 잘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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