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의 또 다른 아버지. 월리스
이런 특징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바로 진화론의 또 다른 아버지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입니다. 다윈이 남미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진화론의 영감을 얻었다면, 월리스는 말레이 제도를 탐험하며, 독자적으로 그만의 진화론을 구상했죠.
1854~62년 말레이 제도(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을 탐험한 그는 섬마다 조금씩 새, 나비, 딱정벌레 등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곤충, 멀리 날지 못하는 새 등은 섬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에, 오랜 기간 고립되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던 것이죠.
지금에서야 신이 '진짜' 아담과 이브를 창조했다고 믿는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불과 200년 전만 하더라도 진화론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월리스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편지로 당시 제법 깨어있는 학자인 다윈에게 보냅니다.
다윈은 깜짝 놀라죠. 세상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을 우려하여, 출판을 20년 동안 꾸물대던 다윈 앞에 자신과 똑같은 주장을 가진 사람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다윈은 용기를 얻어서, 1858년 7월 월리스와 공동의 이름으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논문은 과학자 용이었던 만큼, 큰 화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년 후, 다윈이 독자적으로 발표한 그 유명한 '종의 기원'이 대박을 치죠. 그 결과, 공동 발표임에도, 대중에게 '진화론 = 다윈'이란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영국인 천재들은 하나같이 어찌 그렇게 소심하고 내성적인지... 뉴턴은 젊은 시절에 만유인력을 발견했음에도, 세상에 알리지 않다가 그 사실을 알고 빡친 동료 과학자에 의해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았으면 하지 않아도 될 생고생을 했기 때문이죠.
다윈 역시 출판을 질질 끈 결과, 굳이 생기지 않았을 음모론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다윈이 윌리스의 이론을 낚아채(즉, 윌리스의 편지에 있는..) 진화론의 공동 저자로 끼어들었고, 그 결과 흙수저 윌리스는 잊혀졌다는 얘기입니다. 다윈 또한 어느 정도 진화론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20년 동안 출판을 미룰 만큼 명쾌하지 않았고, 완벽히 정리된 윌리스의 이론을 훔쳐 비로소 '종의 기원'을 출판할 수 있었다는 음모입니다.
결론적으로 허무맹랑한 음모.
출판 후에도 윌리스는 이미 당대 유명한 학자인 다윈과 같이 논문을 공동 편찬했다는 것만으로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었죠. 그리고 '종의 기원'에서 다윈 역시 월리스만의 업적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며 월리스의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지자, 다윈이 앞장서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등 둘 사이의 우정은 계속됩니다.
이런 관계를 보면, 음모론은 허구인 듯 하죠.
내성적인 성격 덕분에 뉴턴은 또 하나의 스캔들 주인공이 됩니다.
뉴턴은 세계 최초로 미분법을 개발하여 자신만 몰래 사용했는데, 독일의 라이프니츠가 자신만의 미분법을 발견 후 세상에 발표하자 원조 논쟁이 발생한 것입니다. 애당초 뉴턴이 공개를 했으면 논쟁 자체가 생기지 않았을 일이지만, 국가 간 싸움으로 번지며 당대 두 천재의 관계는 극도로 험악해지죠.
하지만 다윈과 월리스는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있었기에 이러한 추잡한 싸움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같은 결론을 가진 월리스가 없었다면, 내성적인 다윈이 많은 분쟁을 야기할 출판을 했을지 의문입니다. 또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비주류' 월리스의 연구는 '주류' 다윈의 체계적인 연구 및 출판이 없었다면 학계에 쉽게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지성인이라면, 허무맹랑한 음모론에 빠지는 대신, 차라리 월리스의 다른 업적을 기억하는 것은 어떠할까요?
인도네시아 본토인 자바 섬과 동일한 발리섬의 생태계가 바로 옆 섬인 롬복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월리스는 발견합니다. 예를 들면, 발리에 서식하는 새는 롬복과 50%나 달랐습니다. 반대로 발리 새 종 중 97%는 자바에도 발견되었죠. 롬복 섬에 서식하는 새의 75%는 아시아 종이지만, 발리에서는 단 14%만 호주 종이었습니다.
이러한 발견에 당황한 월리스는 발리와 롬복, 두 섬 사이의 해협이 깊다는 사실을 주목해 가상의 선을 설정합니다.
또한 얕은 바다인 곳은 아주 오래전 육지이었을 것이라 추론했습니다. 자바, 발리, 보르네오 등은 과거 빙하기 아시아 대륙과 연결되었다는 것이죠.
반대로 롬복 섬은 비록 발리 옆에 있지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유래된 동물이 많을 것을 보건대, 과거 오스트레일리아 대륙과 연결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발리와 롬복 섬 사이 깊은 바다로 인해, 육상 동물은 그 이상 이동하지 못했습니다. 새는 바다를 넘어갈 수 있지만, 그나마 35Km 거리를 한 번에 날 수 있는 일부 종만 가능했죠.
극명한 생태계 차이가 생긴 이유입니다.
식물의 경계는 월리스 라인과 다소 차이가 난다고..
이러한 극명한 차이는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그 결과, 월리스 라인은 롬복 해협을 지나 보르네오 섬을 통과하죠. 전체적으로 바다 깊이와 일치합니다.
개인적으로 신기한 것은 롬복 섬 모습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척박한 사막 기후보다 열대의 발리와 비슷하다는 사실입니다. 현재의 모습만 보면, 과거 호주와 연관이 있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죠.
자연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사실 월리스 라인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과서에서도 단 한 줄 찾아볼 수 없죠. 좁은 한반도에서 아등바등 사는 우리로서는 전혀 신경 쓸 이유가 없습니다.
알아두면 쓸모없는 지식이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발리를 가면 꼭 롬복 섬을 가고 싶습니다. 알면 이처럼 신비한 세상이 열리기 때문에 이러한 '쓸모없는' 지식을 알아두는 것이기도 하죠. 이번 세계 일주에서 가지 못했지만, 조만간 방문해서 생태계의 차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이런 사실을 안만큼, 입도할 때도 조심히 해야겠죠? 자칫 외부 동식물이 유입되어, 수십만 년 동안 잘 보존된 생태계가 파괴되면 안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