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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 story by 역사 May 16. 2020

역사상 최악의 거짓말에 속아 무인도로 떠났던 바이킹 족

서로 반대인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두 이름

여기, 이상한 이름을 가진 섬이 있습니다.


로 푸른 초원이 가득하다는 뜻의 Greenland(그린란드)와 엘사의 마법으로 모두가 얼어버린 듯한 Iceland(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대 아이슬란드. 두 섬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 대칭되는 이름을 봐서는 묘하게 어떤 사연이 얽혀있어 보입니다. 



정작 지도를 보면, Green Land인 그린란드는 하얀 얼음으로 덮여 있습니다. 반대로 TV에서 접한 아이슬란드는 생각보다 푸른 곳입니다. 물론 실제 홍해(Red sea)는 붉지 않고, 흑해(Black sea)는 푸른 것처럼, 지명과 맞지 않은 곳이 상당수 있습니다.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역시 이러한 단순 해프닝에 불과할까요? 아닙니다. 잔인하기로 악명 높은 바이킹 민족, 최고의 음모가 숨겨져 있던 것이죠. 





단 기본적으로 바이킹 민족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까요? 


지금이야 놀이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구의 이름에 그 흔적이 남아있지만, 한때 전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하던 민족이었습니다. 

워낙 척박한 환경에서 살다 보니, 태생이 매우 거칠었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따스해지며, 인구가 많아지자 식량이 부족해졌고, 유럽 여러 곳으로 침입했던 것이죠. 놀이기구 '바이킹'이 그들이 타고 다니던 성능 좋았던 배에서 유래했을 만큼, 바이킹의 항해술은 뛰어났습니다. 곧 그 의미는 바다에 면한 지역은 그들의 '밥'이 되었다는 뜻이죠.

아니, 심지어 강까지 거슬러 올라갔기 때문에 사실상 전 지역!



폴레옹, 히틀러조차 점령 못했던 영국 본토가 바로 바이킹 출신, 정복왕 '윌리엄 1세'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도저히 바이킹 민족을 격퇴할 수 없었던 프랑스 왕은 차라리 마음잡고 살라는 의미로써 그들에게 아예 영토까지 주었는데, 바로 그들의 후손이 윌리엄 1세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이 점령하지 못했던 곳이었던 아일랜드 역시 바이킹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도시, 더블린은 바이킹이 세운 도시이었죠. 



중세 최대 사건인 십자군 1차 전쟁 당시 아랍으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했던 군인들의 핵심도 바로 바이킹 민족. 그야말로 적지에 뛰어든 '자살특공대'이었지만 결국 성공했던 대단했던 사람들이죠. 

노예를 뜻하는 영어 단어 Slave가 미녀가 많기로 유명한 러시아 슬라브(Slav) 민족에서 유래한 이유 역시, 바이킹 때문. 당시 기독교를 믿지 않고 만만한 슬라브 족을 바이킹이 노예로 잡아서 기독교 국가에 수없이 판 결과, 어느 순간 그 뜻이 고착화된 것이죠. 바이킹 민족은 한편으로 상인으로 유명했는데, 이유는 뻔했습니다. 

강탈할 물건이 하도 많다 보니, 어딘가에 팔 수밖에 없었던 것



마디로 유럽 전 지역이 두려움에 떨게 만든 끝판왕. 하지만 바이킹 나름대로 살던 곳이 살기에 무척이나 척박하다는 변명거리가 있습니다. 지금의 노르웨이, 스웨덴 지역이 바이킹의 고향이죠. 

그 일부는 일찍부터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났습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아이슬란드.

특히 이곳은 당시까지만 해도 거의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굳이 불필요한 다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친 고향의 환경에 익숙한 그들로서도 도저히 아이슬란드는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변이 온통 하얀 눈밖에 없었기 때문. 

지금도 지구의 일반적인 환경과는 영 딴판이라, 각종 외계 행성의 촬영지로 인기가 많습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나오는 미지의 행성이 바로 아이슬란드에서 촬영된 것이죠.


겨울 아이슬란드


그 이후, 그 땅을 Ice-land(이보다 먼저 발견한 바이킹은 Snow-land로 불렀다니, 아이슬란드의 모습이 어떠한지 추측할 수 있다)로 불렀습니다. 

첫 번째 정착 시도는 실패했지만, 다행히 혹독한 겨울이 끝나면 이곳에서도 새로운 생명이 피어나고는 했습니다. 그래도 이 시기는 살만한가 봅니다. 다양한 시도 끝에 정착이 시작되었습니다. 살기는 꽤 힘들었지만, 다른 지역을 침략하는 것보다는 평화로웠죠.

하지만 그래도 본토보다는 살기 힘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살인을 저지르면, 아이슬란드로 추방되었죠. '붉은 수염' 에이리크의 아버지가 바로 그런 케이스. 


J: 아이슬란드,  K: 그린란드


러나 아이슬란드에도 시간이 흐르자 정착민에게 줄 토지가 점차 부족해졌고, 그로 인해 갈등이 심해졌습니다. 살인자의 아들 에이리크 역시 그러한 혼란 중에 살인을 저질러 아이슬란드에서 3년간 추방되었죠. 그러자 그는 조용히 다른 곳에서 살면 될 것을, 아직 알려지지 않았던 미지의 서쪽 바다로 나가 보기로 했습니다. 

솔직히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이런 곳에선 못 살지..


그 결과... 다행히 얼음으로 뒤 덮인 그린란드 발견했지만, 3년간 탐사 끝에 겨우 사람이 살만한 곳은 2군데 밖에 발견하지 않을 정도로 척박했습니다. 섬 대부분이 대부분이 얼음으로 덮여 있고, 그 외 지역은 대부분 돌 밭이기 때문이죠. 그야말로 초원지대는 남쪽 일부 조금.

그 2곳은 지금도 그린란드의 가장 큰 도시라고...


그나마 살 수 있는 곳에 자리 잡은 바이킹들


그럼에도 에이리크는 그곳을 개척하고자 했습니다. 살기 힘든 곳이지만, 아이슬란드에서 기존 정착인에게 은근 차별과 불이익을 당했기 때문에 아무도 없는 곳에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겠죠. 

하지만 러시아에서 보드카 없으면 살기 힘든 것처럼, 린란드는 좀 거짓이 필요한 땅입니다.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살기 힘들기 때문이죠. 지금도 비교적 가기 쉬운 아이슬란드와 달리, 접근조차 힘듭니다. 현재 인구도 겨우 5만 명 남짓. 그린란드 유학생이 쓴 고생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 대단하더군요. 


그린란드의 겨울, 참고로 저기 밑은 바다이다


씨는 아이슬란드보다 더욱 추워서 농사짓기에도 부적합합니다. 다행히 그린란드를 발견한 시점은 지구가 더워지던 시점이라 그나마 군데 군데에서 농사가 가능하긴 했지만, 결코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죠.

게다가 사회가 발달하지 않았던 바이킹 족이 짭짤하게 각종 귀금속과 필수품을 챙길 수 있었던 약탈도 그린란드 주변에 그 대상이 전혀 존재하지 않아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전적으로 아이슬란드 및 본국에서 수입을 해야 했죠. 


그리고 포악함 끝판왕 북극곰까지 살았다.....



하지만 이곳을 개척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사람이었습니다. 그린란드에서 가장 가까운 아이슬란드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수밖엔 없었죠.   


그러나 야만족이라고 해도, 바보는 아닌 바이킹 민족이 순순히 끌려오지는 않을 터...


우선 폭력을 써서 강제로 데리고 오는 '쉬운'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는 살인자의 아들, 살인자 붉은 수염 에이리크이니까요. 아이슬란드 초기 정착 인구의 상당수는 노예이었던 영국 출신이라는 결과가 있었기도 했죠. 



아니면, 어렵지만 머리를 써서 잘 회유하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영화 '범죄의 재구성'의 명대사처럼, 정착지가 부족하여 많은 갈등이 발생한다는 점을 잘 이용하면, 사실 사기는 은근 쉬었습니다.


사기는 테크닉이 아니다. 심리전이다.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그 사람이 뭘 두려워하는지 알면 게임 끝이다


바로 얼음으로 가득한 실제 자연과 반대로 '녹색의 땅(green land)'이라는 이름을 짓고, 얼음의 땅인 아이슬란드(Ice land)의 거친 환경에 지친 동포의 이민을 자연스레 유도하면, 게임 끝이었던 것이죠.  


붉은 에릭: 나랑 함께 갈래?

동포들: 어디인데. 살기 좋은데 있어?

붉은 에릭: 그럼! 녹색 땅이라서 살기에 좋아!

동포들: 그래? 그럼 지긋지긋한 얼음이 없으니, 농사도 가능하겠네? 당장 콜!



그렇게 하여, 사기꾼 아니, 천재인 그는 그린란드의 우두머리가 되었습니다. 그의 땅이 있었고, 그를 따르는 5000명의 백성들이 생겼죠. 대부족장이 되어 존경받으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겨우 최저 생계를 지키며 살아왔던 그린란드의 삶은 매우 연약했습니다. 1400년대부터 소 빙하기가 시작되어, 그나마 따스했던 그린란드에 강추위가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겨울 그린란드


자원이 부족한 그린란드는 고국인 노르웨이, 아이슬란드와 지속적인 무역을 해야 생존이 가능했는데, 바다가 계속 얼어서 항해가 점점 불가능했습니다. 참고로 타이타닉과 충돌했던 빙하는 바로 그린란드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었죠.


심리적인 압박감이 대단했을 듯


자체 해결을 해야 하지만, 기온 하락으로 농사, 목축업은 더욱 힘들어졌죠. 강한 바람으로 인해 나무가 자랄 수도 없기 때문에 땔감과 추위를 피할 집을 만들기도 어려워졌습니다. 과학자들이 그린란드 바이킹 유골 및 똥을 분석해 보았더니, 실제로 육식 파인 그들이 점점 갈수록 해산물에 식량을 의존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죠. 

그만큼 생활이 열악해졌다는 의미이죠.


론 이러한 극한의 날씨에도 만물의 제왕, 인간은 살 수 있습니다. 이누이트 족(에스키모)은 물개를 사냥하고, 이글루를 세우는 등 현지의 극한 환경에도 버틸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 냈죠. 

하지만 바이킹 민족은 유럽 출신입니다. 게다가 그런 곳에까지 기독교까지 받아들였습니다. 철저하게 유럽 라이프 스타일을 고수했던 것이죠. 원래의 생활 방식을 버리고, 좀 더 생존성이 높은 이누이트 족의 방식을 따르기에는 아직 시대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야만족이라고 부르던 그들의 삶을 따라 한다면, 바이킹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야만족이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이누이트


유럽에서 그 어떤 성과 왕도 바이킹의 앞 길을 막을 수 없었지만, 그런 바이킹조차 자연 앞에 너무나 무기력한 모습이 특히나 인상 깊지 않은가요? 현대의 우리 또한 최신 과학을 자랑하지만, 코로나 사태에서 보듯 자연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할 뿐입니다. 


결국 그린란드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바이킹 민족들은 그 흔적들만 남긴 채 떠납니다. 하지만, 그전에 이미 많은 숫자가 굶어 죽었죠.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전, 


이미 바이킹 민족이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는 이야기, 많이 들어 보셨죠? 사실 역사에 워낙 '카더라' 식의 허황된 주장이 많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들으면 자연스레 경계를 합니다.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관심은 가지되 진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1960년 실제로 캐나다 지역에서 바이킹 유적지가 발견됨으로써 사실로 판단되었습니다. 그동안 전설로 내려오던 빈란드(vinland) 지역을 와인(라틴어로 Vinum) 재배 가능한 남쪽으로 생각하여 늦게서야 발굴되었죠. 



이곳을 바이킹은 역시나 식민지로 삼았습니다. 조금만 더 따스한 남쪽으로 내려가면 살기 좋은 곳이 나오는데, 안습이었죠. 게다가 현지인과의 갈등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유럽에서는 무적이라던 그들도 현지인과의 갈등으로 인해 마음 편히 잘 수 없었던 것이죠. 



아메리카를 발견했던 바이킹 이름은 바로 '레이프 에이릭손'. 바이킹 남성의 이름(현재 아이슬란드 역시)은 '본인 이름 + 아버지 이름(+son)로 구성되는데, 레이프 에이릭손의 아버지는 바로 에이리크(에이릭).즉 그린란드에 처음 정착한 바이킹입니다. 


참으로 여러모로 대단한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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