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국기에도 있는 남십자성 이야기
2년간 45개국 250개 도시를 여행했지만, 여전히 지구는 신비롭고 신기하게 다가옵니다(그래서 세계일주는 최소 5년은 해야 하는가 봅니다). 사실 여행 전에는 조금 이 부분을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유럽 역사를 공부하며 베네치아의 심장, 산 마르코 성당의 이야기를 수없이 접했던 나인데, 막상 보면 그 감흥이 줄어들지는 않을까? 이미 수없이 동영상 및 사진으로 모로코 페즈의 전통 가죽 염색 공장을 본만큼, 그 정도면 직접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까?
책에서 글로만 읽던 것과 실제 지켜보며 느낀 감동은 전혀 달랐습니다. 영상으로 본 페즈의 전통 가죽 염색 공장에서는 특유의 고약한 냄새를 느낄 수 없었거든요. 물가 비싸기로 소문난 베네치아에서 공짜 입장이 가능한 산 마르코 성당에 들어서면, 득템했다는 생각에 없던 신앙심도 생깁니다.
도시 곳곳에 많은 성당을 볼 수 있지만, 교황이 금지했음에도 몰래 이교도와 거래를 했던 베네치아 상인은 자주 신앙심이 없다는 비난을 들었습니다. 베네치아에 "베네치아 인이 첫째요, 기독교인은 둘째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이니...
하지만 경건한 산 마르코 성당에 공짜로 입장해보니, 이러한 비난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신앙심이 부족하다면, 땅이 부족한 베네치아에 이처럼 거대하고 웅장한 성당을 짓지 않았겠죠. 단지 사업을 할 때 잠시 종교보다 돈을 소중히 했을 뿐, 그들은 역시나 신앙심 가득한 중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 프로이었을 뿐!
하지만 베니스, 우유니 소금 사막, 마추픽추처럼 반드시 꼭 어떤 장소에 가야만 지구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평범한 일상의 무대에서도 자연의 신비는 늘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남반구 밤하늘 어디서든 존재하는 남십자성과 배수구 물 빠짐 현상과 같은 것이죠.
지구는 둥급니다. 그래서 북반구에 있는 우리는 남반구의 별자리를 볼 수가 없죠. 남반구의 가장 대표적인 별자리가 바로 남십자성. 북반구에 사는 우리로서는 별 관심이 없지만, 너무나 유명하여 은근 자주 그 흔적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등 국기에 있는 별 모양이 바로 남십자성을 뜻하기 때문.
기독교 국가라는 의미로서 십자가 모양의 별이 있는 게 아니란 말이죠. 북반구 나라의 국기에 북극성 혹은 북두칠성이 단 한 개도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남십자성의 위상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습니다.
영어로는 Polaris, 즉 the north star가 아니다
북극성은 고대부터 길잡이 역할로 유명했습니다. 항상 북쪽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계절 별로 보이는 별자리와 달리 북극성과 북두칠성은 365일 언제나 보이기 때문에 기준점으로 삼기에 안성맞춤이죠.
북극성이 항상 북쪽에 있는 이유는...
그저 우연의 일치입니다. 지구 자전축의 연장선에 우연의 일치로 현재의 북극성이 있기 때문이죠. 지구 자전축의 양 끝이 남극과 북극인 만큼, 그 연장선에 위치한 북극성은 당연히 북쪽을 가리킵니다.
지구 자전축의 세차운동으로 인해, 25800년 주기로 북극성의 위치가 바뀐다. 따라서 12000년이 지나면, 북극성은 현재의 직녀성이 된다. 영어에서 북극성을 단순히 the northern star 대신 Polaris라고 하는데, 훨씬 적절한 표현같다.
그 결과, 지구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북극성은 가만히 고정되어 있고, 나머지 별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남반구에는 북극성처럼 기준을 삼을만한 밝은 별이 많이 없습니다. 그로 인해 대항해 시대, 남반구에서는 배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 결과, 다소 남극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나마 밝은 남십자성이 남반구의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반구에서는 북극성이 있는 작은 곰자리 별자리 역할을 남십자성이 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딱딱한 이과적 설명으로는 어째서 호주, 뉴질랜드의 국기에 남십자성이 있는지 충분히 되지 않습니다.
단지 남극의 기준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여러 나라의 국기에 그 흔적이 들어가 있다고?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1520년 마젤란이 남반구 지역을 가로질러 첫 세계 일주를 했지만, 경도를 파악할 수 있는 도구가 없고, 정확한 지도가 없는 등 여러 어려움 때문에 남반구는 18세기 후반이 되어서도 여전히 미지의 세계이었죠. 영국의 캡틴 쿡 선장이 1769년 항해를 하고 나서야 뉴질랜드와 호주 일대가 유럽에 소개되었습니다.
1788년 영국에서 보낸 호주 첫 개척자들은 다름 아닌 죄수들. 위험했기 때문에 선뜻 일반 시민을 보낼 수가 없었던 것이죠.
미지의 위험한 남반구 바다를 정처 없이 헤매던 중 남쪽 검은 하늘에 비친 십자가 모양의 밝은 별자리를 보았을 때, 뱃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신이 함께 하고, 신이 지켜 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남십자성으로는 배의 위도만 파악할 수 있었을 뿐, 경도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항해는 여전히 위험했습니다. 정확한 경도 위치는 1755년에서야 겨우 알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그와 별개로, 암흑 속에 나타난 십자가, 즉 신의 손길은 두려움에 떨던 뱃사람에게 한줄기 힘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의심을 가득 안고, 집을 떠나야 했던 탐험. 그러나 남십자성을 통해 미지의 세계로 떠났던 그 탐험은 결국 신의 뜻이 되었던 것이죠.
신의 뜻인 만큼, 신대륙과 그 주변 바다에 살던 현지인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직 남미는 대기 오염이 심하지 않고, 고지대가 많기 때문에 여행을 하다 보면 확실히 한국보다 별을 많이 바라보게 됩니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에서 바라보는 별자리는 한층 더 눈부십니다.
북반구에서는 늘 북두칠성과 북두칠성을 활용해 북극성을 찾듯이, 남반구에서는 남십자성에서 시작합니다. 그 별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 별 넘어 남미 반대편 한국에 있을 가족과 지인들 생각이 어느 순간 떠오르고는 하죠.
한국에서 보이지 않은 남십자성이 종종 가요, 문학작품에서 언급되고 있어 신기합니다.
현인의 <고향만리>(1948)은 ‘남쪽 나라 십자성은 어머님 얼굴, 눈에 익은 너의 모습 꿈 속에 보면, 꽃이 피고 새도 우는 바닷가 저편에, 고향 산천 가는 길이 고향 산천 가는 길이, 절로 보이네, 보르네오 깊은 밤에 우는 저 새는, 이역 땅에 홀로 남은 외로운 몸을, 알아주어 우는 거냐 몰라서 우느냐’라는 가사가 있죠. 일제에 의해 보르네오 등 동남아로 끌려간 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남십자성을 보며 어머니를 생각한 장면을 담은 것이라 합니다.
언젠가 당신이 남십자성을 보게 될 때, 분명 한국과 멀리 떨어진 곳이겠죠? 상상의 날개를 펼쳐,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떠올라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