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아빠에게 인형이었다.
엄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가끔식 옆에 누워있는 아기를 보면 인형같이 생겼다.
하루 일과가 몹시 힘든 날, 아기를 꼭 안으면 내 마음이 위로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나혼자 산다의 '월슨'처럼
아기는 아빠의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아빠 : 아가는 아빠의 힐링베이비야.
아기 : 베이비 아닌데 시스터인데.
4살이라고 베이비라는 말은 싫어하는 우리 아기
그래. 언니라고 해줄게. 이제부터는 힐링 시스터다.
그리고 힘든 하루를 마친 오늘
아빠는 아기를 다시 꼭 안았다.
아기 : 아기는 이제 인형 아니거든. 안으면 어떡해.
아빠 : 아빠, 힐링 시스터 아니었어?
아기 : 아기는 이제 사림이거든
아기는 더 이상 아빠의 인형 놀이가 싫은가보다.
불꺼지 어둠 속에서 시무룩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아빠를 향해 아기가 말을 건다.
아기 : 알았어. 내일 TV 보기 전에 한번 안아줄게.
아빠는 그 말이 뭐가 좋다고 웃음을 짓는다.
참 바보 같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가고 있다.
그에 반해 아빠는 인형을 찾고있다.
아이는 성장하는데 불혹의 아빠는 조금씩 아이가 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