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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의 Apr 01. 2024

[서평] 모순 (양귀자)

인간은 각자 해석한 만큼의 삶을 살아낸다

✅ 이런 분에게 추천합니다

-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할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사람




◇ 무엇이 진짜로 '인생의 상식'일까?


때때로 나에게는 당연하고 상식적인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걸 느끼는 상황과 마주한다. 모든 삶은 자신만의 역사를 기반으로 저마다의 상식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몇 년 전, 나는 어떤 언니를 보며 내가 그 언니만큼 나이를 먹으면 언니의 모든 행동과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정작 그만큼 나이를 먹고 난 뒤 알게 된 건 언니와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아직도 나는 그 언니가 주장했던 삶의 진리를 어떤 예외도 두지 않고 모조리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언니의 삶에서는 당연한 것들이 내 삶에는 전무했기 때문에 그 언니는 함께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를 가르치거나 면박 주는데 활용했는데, 예전에는 그 행동이 지긋지긋했지만 요즘 들어서는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그때 그 언니 같은 사람이 되면 어쩌나 싶어 말을 아끼곤 한다. 


아무리 나에게는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는 사람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 언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삶을 살아낸다'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삶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 타인의 삶에 훈수 두지 않기로 하다


양귀자 님의 장편 소설 <모순>을 읽으면서도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언니를 떠올리며 말을 아꼈다.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에게 어떤 결정이든 성급하게 내리면 나중에 후회하니까 마음에 충분히 여유를 둬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고, 그래서 꼭 1년 안에 결혼 상대를 찾을 이유는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눈앞에 있는 두 남자만 바라보며 재고 따지지 말고 시야를 넓혀 다른 사람과도 대화를 많이 나눠보라고 말하고 싶었고, 정말로 상대방을 좋아하고 아낀다면 미움받을 용기를 갖고 진실을 터놓고 얘기하라고 진지하게 조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페이지 속에서 주인공이 스쳐 지나가듯 말하는 변명이 떠올랐다. 결혼 외에 다른 선택지를 찾고 멋지게 살고 있는 여성이 있음을 알지만 그래도 자신은 결혼을 할 것이라고, 그리고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할 것이라고. 게다가 주인공이라면 그 이유까지 이렇게 똑 부러지게 말할 것이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그러니 주인공의 인생에 입을 얹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그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명확하게 있었다. 주인공의 삶을 찬찬히 따라가보며 주인공의 선택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무엇이 정석이고 옳은 행동인지 판단하려는 걸 멈추고, 각자의 인생 전반을 둘러보고 그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이 무엇일지 함께 탐구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주인공의 이름이 안진진으로 정해진 것부터 주인공의 삶은 모순 투성이가 되었다는 점에서 시작할 수 있겠다. 참 진(眞)자가 두 번이나 들어간 이름이지만 성이 '안'이기 때문에 정말로 진실한 것인지, 진실하지 않은 것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안진진의 삶에 깃든 모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일란성 쌍둥이인 엄마와 이모는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얼굴로 자랐지만, 서로 다른 배우자를 만나 삶이 극단적으로 바뀌었다. 안진진은 술을 마시면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 대학에도 진학하지 못했고, 이모의 딸 주리는 건실한 아버지 밑에서 곱게 자라 한국과 외국을 오가며 학업을 이어간다.



이모의 딸 주리는 주인공과는 다르게 세상 물정을 잘 몰라도 괜찮을 정도로 부유한 집에서 자랐다



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안진진을 사랑하는 두 남자의 삶 또한 극단적으로 다르다. 김장우는 가난한 사진작가이지만 순수하며 즉흥적이고, 나영규는 건실한 직장인이지만  모든 일에 분 단위로 계획을 세우며 상대의 말은 귀담아듣지 않는다. 둘 사이의 공통점이라면 안진진을 무척 사랑한다는 것밖에 없다.


주인공은 모든 조건이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임에도 불구하고 결혼으로 삶이 극명하게 달라진 엄마와 이모를 보며, 자신은 어떤 남자와 결혼하면 좋을지를 재고 따진다.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라는 비장한 다짐을 하면서. 


독자로서는 '결혼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을까','두 남자 모두 별로인데 꼭 둘 중 한 사람을 선택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을 할 생각이 없더라도, 두 남성을 두고 어느 쪽과 결혼할지 재고 따질 일이 없더라도 인생에서 모순과 만나는 일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이 내리는 어떤 중요한 선택에는 어떤 삶이 그 밑바탕이 되었는지 탐구할 수는 있다.


따라서 모순의 주인공 안진진의 선택을 통해 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옳은 선택과 그른 선택을 재고 따지는 걸 그만두는 행동이다. 그 대신 독자는 '모든 삶에는 저마다의 모순이 있다'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진실을 숨기고 보기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는 주인공의 모습은 주인공의 삶에만 깃든 모습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 또한 연애를 하지는 않아도 연예인에게 열광한 적이 있었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좋아하는 감정을 보여주기 부끄러워서 일부러 쌀쌀맞게 말했다가 오랫동안 후회한 적이 있다. 모순이 이처럼 모두의 삶에 깃든 것이라면 우리는 삶의 모순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 날까지 사랑이 지속된다면 죽는 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나를 왜곡시킨다.



◇ 삶의 모순에 대처하는 법


주인공은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라고 독백한다. (참고: 겨자씨 크기)  하지만 아무리 겨자씨가 작을지라도, 겨자는 씨앗의 본래 크기와는 상관없이 높게 자랄 수 있는 잠재력이 숨어있다. 아무리 깊이가 얕은 강물이라도 길이 잘 트여있기만 한다면 끝도 없이 이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삶이 도중에 끊어지지 않는 한, 삶의 깊이가 아무리 얇더라도 그 길이는 다채로운 경로로 길게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니 피할 수 없는 모순을 맞이하는 날이 오더라도 그대로 삶을 진전 없이 주저앉혀놓지 말고, 모순으로 인해 만들어진 인생길을 그저 계속 걸어가 볼 용기를 내보는 것이 삶의 모순을 견디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라는 주인공의 말처럼, 모순적인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더라도 그 선택을 견뎌내며 살아가다 보면 추후에는 그 모순이 결국 어떤 목적지로 향하는 길이었는지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인생에서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아무리 재고 따져봐도 우리는 정녕 아무것도 알 수 없을 것이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각자 살아온 삶의 배경에 따라 '옳은 것'의 기준은 제각기 다르고, 설령 무엇이 옳지 않은지 분명하게 알고 있을지라도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옳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도 누구에게나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생이 모순 덩어리인 것처럼 느껴지고, 무엇이 옳은 줄 알면서도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 같아 막막하고 무력할 때일지라도 인생은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라는 문장을 기억해 낼 수 있다면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나의 인생 혹은 타인의 인생에는 잘못된 선택만 가득한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그 삶의 부피가 겨자씨만큼 작고 초라하게 보일지라도, 그 삶을 버티고 살아가면서 탐구하다 보면 그 모순 때문에 발견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삶이란 남이 말하는 정답이 아니라 나만의 방식대로 해석하며 살아내는 것임을 인정하게 되며 모순 덩어리인 삶에서도 삶을 이어나갈 활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책을 읽고 행동으로 옮기고 싶은 점]


            다른 사람의 인생을 토대로 앞으로의 정답을 찾아가려 했다면, 한 번쯤은 과거에 내린 잘못된 선택을 돌아보며 어떤 선택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는지 돌아보기. 잘 살펴보면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된 선택이 모두 후회스럽기만 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답을 찾고 싶은 질문]


            현실적인 선택과 마음이 원하는 선택 중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후회를 덜할까?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말하기 불편하더라도 진실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까, 아니면 억지로라도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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