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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의 Oct 15. 2022

국어국문학과가 외국 시 읽는 법

밤하늘은 언제나 가장 짙은 블루, 사이하테 타히

국문과 출신인데도 나는 시가 어렵다. 그래서 교수님이 시를 읽고 쓰라는 과제를 내주실 때나 겨우 읽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기다렸다는 듯 시집도 사지 않았고 시를 쓰지도 않았다.


내가 시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힙합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와 비슷하다. 힙합은 라임과 비트를 즐길 수 있는 장르인데 나는 그 두 가지를 합친 것보다 음악의 멜로디에 집중하는 게 훨씬 더 좋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시는 운율과 함축을 즐길 수 있는 문학이지만 솔직히 나는 캐릭터와 스토리를 탐구하는 게 훨씬 재밌다. 그래서 여전히 소설이나 다큐멘터리, 에세이를 통해 사람을 관찰하고 그들의 삶을 엿보는 일을 좋아한다.



그런데도 사이하테 타히의 시집을 구매하게 된 건 순전히 우연 때문이었다. 원래도 나는 즉흥적인 도전을 좋아하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기분이 내키는 대로 무작정 행동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요즘 병렬적으로 읽고 있는 책에서 자꾸 이런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라.’


그래서 오늘의 내가 원하는 대로, 굉장히 독특한 서점에 방문해서 서점이 큐레이션 한 도서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독특하게 분류된 그 모든 책들을 지나치고, 아치형 책꽂이의 가장 하단에 있는 시집 코너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시집 하나를 꺼냈다.


밤하늘은 언제나 가장 짙은 블루


마침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파란색이었고, 내가 선호하는 제목도 이런 긴 문장형 제목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책날개의 작가 설명란에는 이런 설명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논리적이고 얼개가 짜인 글쓰기에 무료함을 느꼈고, 그림책과 록 밴드 노래 가사처럼 맥락 없이 자유롭게 도약하고 날아다니는 글을 좋아했다.


첫 번째 시집 굿모닝으로 당시 여성 작가 최연소 만 21세에 제13회 나카하라 주야상을 수상하며 크게 주목받는다.


사이하테 타히는 다니카와 슌타로 이후 일본 현대시의 명맥을 잇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한다.


시뿐만 아니라 소설, 그림책 창작, 번역, 작사까지 장르와 경계를 초월하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나아가 시 전시회, 시가 있는 호텔, 게임과 애플리케이션 개발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독자들이 시를 새롭게 체험할 기회를 만들고 있다.



락밴드처럼 자유로운 글쓰기를 좋아하고, 한 가지 일에는 만족 못 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여성이 나 말고도 또 있었단 말이지? 그걸 알게 되자 무척 반가워서 그 자리에 선채로 시집을 앞에서부터 쭉 흝어보았다.


시집의 가장 뒤편에는 9,500원이라는 숫자가 있었다. 이날의 모든 즉흥적인 선택의 끝을 낯선 시인의 시를 읽는 것으로 끝내고자 바로 구매했다. 그렇게 곧장 구매하지 않았더라면 한참 망설이다 결국 빈손으로 떠날 게 뻔했다.



국문학과가 외국 시 읽는 법


현대시에 대한 국문학과 전공 강의를 듣던 중 이런 과제를 받은 적이 있다. 마음에 드는 시를 직접 사서 읽고 적극적으로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과제이다.


시집 두 권을 사서 (어쩌면 세 권이었을지도) 인상적인 구절에 밑줄을 긋고, 시의 하단에는 자신의 생각을 적을 것

그리고 시집의 가장 앞장에는 시집의 전체적인 감상을 적을 것


수능 준비하듯 시를 읽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냥 시를 읽고 내 생각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글로 풀어낼 수만 있으면 되었다.


해석도 내 마음대로, 감상도 내 마음대로 적어도 사이하테 타히가 날 질책할리 없다. 그래서 사이하테 타히의 시집을 읽을 때에도 철저히 내 입장에서 시를 읽어보았다.



마음에 드는 구절 하나를 발견하면 수십 번을 고민했다. 그리고 빈 곳에 내 생각을 계속 적었다.


내 생각은 (당연하게도) 시보다 훨씬 더 길었다. 시인은 대체 이 많은 감정을 어떻게 이런 짧은 표현으로 함축할 수 있었을까 감탄이 나올 정도로.



이해가 가지 않는 제목이 있다면 대체 왜 이런 시에 이런 제목을 썼는지도 고민해 보았다.


내가 외국인이라서 단어의 숨겨진 의미나 언어유희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를 읽으며 이렇게 고민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랫동안 고민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문학을 읽는 이유가 있다면 타인의 생각을 바탕으로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함이니까.


결국 타인을 통해 나를 바꾸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시인의 생각 옆에 내 생각을 적었다. 내가 해석을 잘못 한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은 애써 떨치고.



사이하테 타히를 읽고난 뒤 생각


이렇게 내 생각을 적다 보니 시를 몇 편 읽지도 않았는데도 몇 시간이 걸렸다. 사실 아직 다 읽지도 못했다. 하지만 사이하테 타히에 대한 인상은 매우 선명해졌다.

 

타히의 시에서는 고독, 배신, 죽음 같은 단어가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단어를 엮어 부정적이고 어두운 세계를 그리진 않는다.


그냥 사람에게는 이런 면이 있다는 걸 솔직하게 드러낼 뿐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눈에 안 보이는 척, 내게는 없는 척, 남들처럼 멀쩡한척하지 않는다.


그 모든 감정을 혼자 짊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살아가고,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의 모습. 타히는 그것이 바로 사람다운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책 뒤편에 수록된, ‘당신들은 귀엽다’ 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시인의 말에서도 이런 마음이 엿보인다.


남들에게 말 못 할 유치한 감정, 올바름이니 상냥함이니 그런 것들에 짓밟히는 고민, 고름. 있어서는 안 되는 감정으로 치부되는 것들이 좋다. 있어서는 안 되는 감정, 그런 것이 있을 리 없는데, 그럼에도 맞서는 모습이 좋았다. 아무리 인수분해를 해본들 이해받을 수 없을 그 감정이, 그 사람을 오직 그 사람으로 존재하게 만든다. 사람은, 자신이 귀엽다는 사실을 좀 더 분명히 알아야 한다.


타히는 ‘렌즈와 같은 시를 쓰고 싶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가진 감정이나 이야기를 조금 다른 빛깔로 보여줄 수 있는’ 시 말이다.


그 부분을 읽으니 타히의 시 옆에 내 생각을 한가득 늘어놓길 참 잘했구나 싶었다. 타히도 어느 외국인이 자신의 시집을 읽고 다양한 생각을 풀어냈다는 사실에 기뻐할 테니까.

 

그래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타히의 시를 소개하면서 내 생각도 함께 전하고 싶다. 시처럼 짧고 강렬하게 줄일 수는 없어도 시와는 다른 빛깔이기에 그만큼 가치있을 생각들을 모아서.





타인이 만들어놓은 삶에 나를 끼워 넣지 않아도 된다. 남과 나를 비교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 읽기 좋은 말.


나는 대도시를 좋아하고, 동경한다. 하지만 때때로 내가 대도시의 일원으로 평생을 살 수 있을까 의심하기도 한다. 타히는 극단적인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단어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는 없어도 내가 도시를 떠올릴 때 마냥 긍정적인 기분만 떠올리진 않는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 맥락이 이해가 되긴 한다.


게다가 나도 도시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썩 좋아하지도 않은 물품들로 몸을 둘러싼 경험이 있다. 그런 점에서 손톱에 칠한 색을, 너의 몸속에서 찾아보려 한들 헛일이겠지라는 문장도 이해가 간다. 내 것이 아닌 사물들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려고 했던 적이 있었지.


죽어버린 것들이 아름다운 실이 되기도 한다


이 문장에 꽂혀서 위로에 대해 적어보았다. 그동안 나의 힘든 일을 남에게 토로하는 일이 어려워서 오히려 남을 이해하고 위로하는데 시간과 노력을 썼다.


그런데 어쩌면 예상과는 다르게 타인에게도 내 힘듦을 들어줄 여유가 충분히 있고, 나 혼자서는 전혀 끄집어낼 수 없었던 의미를 발견해서 위안을 줄지도 모른다. 힘듦이 있는 그대로의 힘듦이 아닐지도 모른다. 죽은 것들이 아름다운 실이 되기도 한다면.


난 널 모르지만, 네가 만든 것보다, 네가 거기 있음을 좋아하고 싶어


멋진 모습, 잘나가는 모습, 행복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더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칭찬받는 세상을 상상해 보았다. 비정규직도, 나이 어린 사람도, 동양인도, 대도시에 살지 않는 사람도, 어떤 조건도 붙이지 않고 그냥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랑받는다면.


널 만나지 않아도 어딘가에 있을 테니, 그걸로 됐어.


정말 동경했던 사람, 10년 동안 손 편지를 주고받았던 소꿉친구,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있지만 먼저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는 옛 친구가 떠오르는 시.


순수한 사랑 이야기 같은 이 시의 제목은 ‘조각칼의 시’이다.

왜 하필 조각칼일까?


고민 끝에 조각칼은 작품을 만들고 나면 다시 손댈 일이 없는 도구라는 걸 떠올렸다. 완벽한 시간을 함께 보낸 대상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마음이 곧 조각칼과 같지 않을까?

좋아해     헤어진 뒤에 그 기분만 남는다면     넌 분명 노을에 잠겨

지구 위를 맴돌겠지


가끔씩 나와 너라는 존재는 의미가 없고    우리 사이의 기분만이 세상에 진짜로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동경했던 사람과 도통 가까워지지도 못하고, 어떤 용기도 기회도 없어서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그 순간에 그 사람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있는 요즘.


이 마음이 ‘세상에 진짜로 필요한’ , ‘우리 사이의 기분’일 것이다.

오늘도, 택시 유리창이, 카드놀이하듯 거리를 섞는다.

고향의 밤하늘이 한 톨씩, 나의 피부에서 벗겨져 간다.


이 구절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한참을 반복해서 읽었다. 빠르게 달리는 차 안에서, 창문을 열고 찬 바람을 맞으며 바깥 풍경을 내다보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고향의 밤하늘이 피부에서 벗겨져 간다는 표현은 볼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차가운 바람을 의미하는 거라고 내 멋대로 해석했다.




이처럼 도시 속에 있으면 외롭고 차갑다. 하지만 그런 외로움과 쌀쌀함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모두 각자 고유하지만 모두 같은 감정 속에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만 쓸 수 있는 함축된 표현으로 남에게도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시는 참 독보적이다. 굉장한 시를 쓰는 시인이 되지 못하더라도, 나만의 이야기 속에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끌어내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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