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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의 Dec 24. 2022

다이어트 중 초콜릿을 먹다가, 에피쿠로스식 쾌락을 찾다

책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를 읽고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일주일 차, 맛있는 선물을 받았다. 겉면에 귀여운 빨간색 리본이 둘러진 4종류의 판 초콜릿이다.


이들은 포장만큼이나 이름도 매력적이었다. 밀크, 다크, 히비스커스와 화이트 초콜릿, 아몬드가 섞인 밀크 초콜릿.


선물을 받은 지 나흘 정도 지났을 무렵, 대체 어떤 맛이 나는 초콜릿일지 궁금해서 포장을 뜯어보았다. 두께감이 느껴지는 질 좋은 종이 포장을 양문형 냉장고 열듯 열어젖히니 금박의 바스락거리는 포장지가 보였다. 그 아래에는 당연스럽게도 큼직하게 8개로 조각난 초콜릿이 있었다.


초콜릿 두 조각을 꺼내 먹은 뒤 나머지는 눈에 안 띄는 장소에 밀어 넣으며 생각했다. 심심할 때, 기분 상할 때, 허전할 때 초콜릿이나 과자처럼 내가 아주 좋아하는 간식을 먹는 것 말고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처음에는 게임을 하는 것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고 했는데 게임은 생각보다 썩 재밌지 않았다. 그렇다면 도어스토퍼 마냥 몇 년째 문가에 세워둔 기타를 다시 배워봐도 되지 않을까.


마침 겨울이니 뜨개질을 배우거나 혹은 그림 그리기 같은 생산적인 취미를 배우는 것도 좋아 보였다. 생각을 다른 곳에 집중하거나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활동이라면 뭐든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내 선택은 읽다가 중간에 그만둔 책을 다시 펼치는 것이었다. 큰 결심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언제나 눈에 띄는 곳에 있어서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빨간 리본으로 묶인 4종류의 초콜릿처럼.


아메리카노를 옆에 끼고 책을 들었다. 꽤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책갈피를 꽂아둔 곳을 확인하니 이제 겨우 1/3 정도만 읽었다. 총 14개의 챕터 중 6번째 챕터, 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런데 아무런 기대 없이 펼친 바로 그 챕터에서 내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답은 '충분히 좋은 것에 만족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산더미처럼 쌓인 고통 맨 위에 사소한 즐거움을 올려놓고는 왜 행복하지 않은지 궁금해한다.
어쨌거나 고통은 고통이다. 만족에 도달하길 바란다면 반드시 이 고통을 해결해야 한다.


아무리 단순한 성격의 나라도 초콜렛 두 조각만으로 행복해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간식 먹는 걸 대체할 수 있는 다른 활동을 찾으려 한 것이다.


진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건 운동에 쓴 돈과 시간, 그리고 균형 있는 식단을 통해 건강해지는 것이다.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살아온 시간은 고통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하는 빵과 치즈,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달콤한 음료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온 시간이 참 많았다. 그래서 격렬한 운동으로 체중을 감량했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도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던 것 같다.




당신은 연어 테린에, 즉 그 연어를 잡은 어부에게, 테린을 내놓은 레스토랑에, 테린을 사 먹을 월급을 준 상사에게 당신의 행복을 의탁했다.

이제 당신은 연어 테린 중독자이며, 당신의 행복은 연어를 주기적으로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

이게 다 당신이 불필요한 욕망을 필요한 욕망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행복을 의탁하는 순간은 다이어트를 할 때에만 벌어지지 않는다. 무언가를 원하는 모든 순간에 벌어진다.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려고 할 때, 타인의 사랑을 원할 때, 원하는 목표를 달성해 내지 않으면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 때 등등.


연어 테린을 먹지 못하면 불행한 삶이라는 생각은 언뜻 보면 우스워 보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불필요한 욕망을 추구하느라 우스운 불행과 맞이한 사례를 사방팔방에서 볼 수 있다.


때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불필요한 욕망'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과 다르게 정말로 크고 중요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말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즐기는 것이 우리를 풍요롭게 만든다


우리는 캐비어를 맛보고 즐거워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우리는 곧 다시 캐비어를 갈망하게 된다.
이게 문제가 된다.

캐비어는 갈망이 우리를 괴롭히는 만큼 맛있을 수 없다. 쾌락으로 시작된 것이 고통으로 끝난다.

유일한 해결책은 욕망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내게 있어 불필요한 욕망, 연어 테린, 캐비어는 무엇이었을까? 식단을 관리하느라 맛있는 음식을 못 먹는 것 외에 말이다. 어떤 불필요한 욕망이 올해의 나를 힘들게 했는지 잠깐 생각해 보았다.  


    보스 헤드폰을 사지 못한 것  

    올해 여름에 호캉스를 가지 못한 것  

    분위기 좋은 바에서 맛있는 술을 못 마신 것  

    닥터 마틴을 갖지 못한 것  

    닌텐도 스위치가 없는 것  

    더 많은 조회 수와 팔로워를 얻지 못한 것  


에피쿠로스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욕망의 최소화를 내놓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욕망을 억누를 수 있을까?



난 충분히 좋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다고 봐요.

이런 것들이 삶에서 더 중요한 일에 시간을 쏟을 수 있게 해줘요.

게다가 충분한 걸로는 부족한 사람에게는 뭐든 충분하지 않을걸요.



충분히 좋음은 자기 앞에 나타난 모든 것에 깊이 감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꾸준히 써온 감사 일기가 끝내는 나의 뾰족함을 도려낸 것처럼, 충분히 좋은 것을 인식하고 감사해하는 것 또한 불필요한 욕망 때문에 스스로 불행을 자처하는 태도를 방지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앞서 나열한 목록들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보스 헤드폰은 없지만 N년 전에 산 헤드폰으로도 에어팟보다 훌륭한 음질로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에어비엔비로 친구들과 함께해도 충분히 재밌었다  


    어차피 술보다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술을 못 마셨다고 불행해할 이유는 없다  


    닥터마틴, 닌텐도 스위치가 없다고 뭐 세상이 엎어지기라도 하나?  


    게리 바이너척은 남들의 의견에 너무 큰 의미 부여를 하지 말라고 한다. 이처럼 내게 진짜 중요한 것을 따르면 된다.  




에피쿠로스적 시간:

충분히 좋은 와인을 곁들인 소박한 식사, 
우정이라는 사치 그리고 시간, 고통 없음, 
즉 아타락시아에서 오는 쾌락



"에피쿠로스라면 어떻게 했을까?"
물론 스타벅스에 갔겠지.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한다.

독특하지 않다.
애정을 담아 커피를 내리는 직원도 없다.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충분히 좋다.

다른 말로, 완벽하다.



지나치게 욕망하느라 불행해하지 말고 지금 가진 '충분히 좋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 미래의 쾌락을 얻기 위해 현재의 고통을 맞이하는 것.


이러한 에피쿠로스식 쾌락을 염두에 두면 다이어트 중 초콜릿을 먹지 못하는 것으로 불행을 느낄 일이 없겠지.


달콤한 과자와 초콜릿이 간절할 때마다 생각을 전환시킬 수 있는 다른 행동을 발견하고, 에피쿠로스식 생각으로 쐐기를 박으면 군것질에 대한 욕망이 확연히 줄어들 것 같다. 


게다가 나의 주변에는 충분히 좋은 것이 많다는 걸 덤으로 알게 되어 불만 또한 줄어들겠지. 


이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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