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1부 인간의 위대함은 운이 아니라
미덕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미덕
29. 올곧은 사람을 가까이 하라.
올곧은 사람. 이런 사람은 늘 이성의 편에 있다. 그리고 대중의 분노나 폭력이 이성의 선을 넘지 못하게 막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다. 하지만 과연 누가 이런 공정의 불사조가 될 수 있을까? 올곧은 사람들은 언제나 극소수다. 많은 사람이 그것을 찬양하지만, 자기 안위를 생가하느나 그렇게 행동하지 못한다. 한결같은 올곧은 사람은 늘 진리 편에 선다. 만일 그들이 사람들을 떠나게 된다면, 그들이 변덕스러워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먼저 진리를 저벼렸기 때문이다.
1. 이OO (55세, 사망)
늦은 하교길, 짐자전거를 끌고 막내딸을 기다리던 아버지.
없는 살림에도 자식을 위해 학원까지 보내며, 저녁 식사도 거른 채 마중을 나왔다.
자식 넷이 태어날 때마다 곁을 지켜주었고, 부인은 그가 도착해야 안심하고 아이를 낳았다.
산파를 불렀다는 이유로 친할머니에게 무자비하게 맞기도 했다.
자식들 앞에서 맞으면서도, 아무 말 없이 견뎠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누구보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자식들을 끔찍이 사랑했다.
사건과 사고를 일일이 기록해두던 아버지.
혹시 자식들이 기억을 못할까 걱정되어서였을까?
그 기록은 끝내 다시 꺼내 읽지 못했다.
그가 사망한 뒤, ‘올곧은 사람’이라는 말은 더 또렷하게 주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53세에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서 삶을 헤쳐 나가신 어머니.
최근에는 중환자실에 있을 정도로 상태가 위중했지만, 여전히 꿋꿋하시다.
막내딸이 암 투병 중이라 고통에 찬 꿈을 꾸면,
“귀신이 나와도 내가 다 이긴다”고 말한다.
그 강인함은 곧 올곧음이다.
초등학교도 못 나왔지만, 누구에게나 ‘선생님’이라 부른다.
그것은 상대에게 배우겠다는 마음이요, 자신을 낮추는 예의다.
낮잠을 주무신 후, 필사를 하시고는
“아침을 먹자”고 하셔서
“엄마, 지금은 저녁 드라마 나오는 시간이예요.”라고 하면
당황하시면서도 금세 웃으신다.
정신줄 놓지 않으려 애쓰는 86세.
공부하는 어머니는 내게 언제나 존경의 대상이다.
나의 병원 동행자, 나의 오빠.
휴직을 하고, 췌장수술을 하고, 남편과 이별하고, 아들 둘이 군에 가 있는 이 상황에서
중환자인 친정엄마와 함께 살아왔다. 복직을 하고 6개월 어느날, 암판정을 받았다.
그동안 엄마를 모시며 여행도 다니고, 소소한 추억을 쌓던 나날들.
그러다 갑작스레 암에 걸린 나를 지키기 위해
오빠는 자신의 일을 내려놓고 병원 일정에 맞춰 움직인다.
“지금은 복잡한 생각 말고, 치료 잘 받는 게 1단계.
그다음은 회복이야.”
그 말에 울컥한다.
지금 나에게, 세상 그 누구보다 올곧은 사람이다.
내가 암이라는 큰 산을 마주할 때
말없이 곁에 있어준 사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나를 놀이터로 이끌어 준 사람.
그 놀이터가 없었다면, 내 정신은 썩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몸은 살아 있어도, 마음은 죽은 채로 살았을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책 몇 줄만 읽어도, 짧은 글 한 줄만 써도
나는 다시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이 작가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을 수 있도록 이끄는 이.
그 자체로, 올곧은 사람이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따라간다.
세계적인 사람은 아닐 수 있다.
모두가 아는 이름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지금 내 삶에서 올곧은 사람들이다.
그들이 내 곁에 있어 나는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