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1부 인간의 위대함은 운이 아니라
미덕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미덕
30. 현명한 사람은 평판을 나쁘게 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
평판이 나빠질 일에는 가담하지 말라. 명성보다 경멸을 부르는 황당무계한 일에는 더더욱 끼어들지 말라. 온갖 종잡을 수 없는 파벌들이 많은데,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그 모든 것을 피해야 한다.
며칠 전, A 선배에게서 톡이 왔다. 같은 부서에서 잠깐 함께 근무한 적은 있었지만, 지난 3년간은 서로 바쁘게 지냈다. 얼마 전 회사에서 희망퇴직 바람이 불어 50대 이상 직원들 200명이 퇴직했다. 동료들이 회사를 떠나고 나니, 예전엔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사람조차도 반갑고 애틋해졌다.
A 선배는 그동안 정신이 없어 연락도 못 했다며, 건강 잘 챙기라는 톡을 보내왔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고마웠다. 하지만 '이젠 정말 암환자 같아 보인다'는 문장에 잠시 멈칫했다. 선배는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톡을 주고받다 보니 선배에게서 선물까지 도착했다. 걱정해주는 마음은 분명 고마웠지만, 한편으론 당황스러웠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선배가 알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회사에 누가, 무슨 이야기를 퍼뜨린 걸까?
요즘은 회사 사람들과 만날 일도 없어 자세히 알기 어렵다. 그저 묘한 기분만 남는다.
혹시 B 선배일까? 아니면 C 선배?
두 사람 모두 평소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주던 분들이다.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집에 들러 반찬이며 과일까지 챙겨다주고, 본인의 근황과 회사 이야기도 나눠준다. 그런 그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내 상황을 설명했을 수도 있겠다.
소문은 소문을 낳고, 결국 전국 매장까지 퍼진 모양이다.
어제는 본사가 아닌, 서울의 한 점포에서 동료가 전화를 걸어왔다. 항암 부작용 증세까지도 자세히 알고 있었다. 나는 그 동료와 단 한 번도 통화한 적이 없다. 놀라웠고, 동시에 조금은 씁쓸했다.
누구한테 들었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보다 더 마음을 무겁게 하는 건, 그 아픔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다짐한다.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누군가를 챙겨준다는 명분 아래, 마음 깊숙이 상처를 남기지 않겠다고.
전화 한 통, 선물 하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픈 사람의 소문이 여기저기 흘러다니지 않는 것이다.
조심스레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지금껏 어떤 사람이었을까?
사람을 대하는 내 말투와 태도, 마음은 어땠을까?
오늘 하루, 내가 만난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진 않았을까?
이제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먼저 나 자신을 반성해야, 혹여나 평판을 나쁘게 할 수 있는 일에 무심코 가담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이 진짜 지혜로운 삶의 시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