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에 신경 쓰느라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1부 인간의 위대함은 운이 아니라

미덕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미덕

33. 남 일에 신경 쓰느라 자신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을 분리할 줄 알라. 거절하는 법을 아는 것이 삶의 큰 교훈일진대, 그 보다 더 중한 것은 일이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분리해낼 줄 아는 것이다. 귀중한 시간을 좀먹는 이상한 일들이 있는데, 그런 골치 아픈 일을 하느라 분주해지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해롭다. 남의 일에 신경 쓰느라 자신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과 나를 분리해내는 일,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꼭 배워야 할 삶의 기술이다. 거절하는 법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일이나 관계 속에서 ‘나’를 분리해낼 줄 아는 일이다. 시간을 좀먹는 이상한 일들, 애매한 부탁, 미묘한 감정의 책임감들. 그런 일에 휘말려 분주해지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보다 더 지치고 해롭다.


살다 보면, 누군가는 해결사처럼 다가온다.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경험을 꿰맞추려 하고, 아픈 사람에게서조차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 마음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그 마음이 때론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예를 들면 이런 일이다. 항암 부작용으로 미각을 잃고 음식을 못 먹을 때가 있다. 가족은 나를 위해 정성을 들여 음식을 준비한다.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서 한입 시도해본다. 하지만 몸이 먼저 반응한다. 울렁거림에 도저히 더는 삼킬 수 없어 포기하면, 그 순간 실망이 담긴 눈빛이 나를 스친다. '정성껏 해줬는데 왜 못 먹지?' 그 눈빛을 마주하면 오히려 더 아프다. 아픈 나를 위해 준비한 마음에 내가 신경 써야 한다는 생각, 그건 어쩌면 서로에게 너무 가혹한 무지일지도 모른다.


지인이 소개해 준 한의원도 그렇다. 원장을 잘 안다며, 꼭 도움이 될 거라며 말한다. 고마운 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발이 부어 걷기도 힘들다. 지금 당장 갈 수 없음에도, 그 말을 들은 뒤엔 마음이 계속 불편하다. ‘가야 하는 게 맞는 걸까?’ ‘안 가면 서운해하진 않을까?’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그 마음에 내가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잠시 혼란스러워진다.


하지만, 결국 아무도 타인의 삶을 완전히 해결해줄 수는 없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다르게 아프고, 다르게 견디고 있으니까. 내가 겪은 일이 누군가의 해결책이 되리라는 기대는 어쩌면 착각이다. 우리는 누구의 삶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그저 지켜봐 주는 것. 자신의 삶에서 선택하고 판단하며 살아가는 그 과정을 존중해 주는 것. 그게 어쩌면 누군가를 위하는 가장 따뜻한 방식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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