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기 전에 탁월함의 출처를 알라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1부 인간의 위대함은 운이 아니라

미덕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미덕


34. 늦기 전에 탁월함의 출처를 알라


자신의 훌륭한 자질을 알라. 탁월한 자질을 키우고 나머지 자질들은 보완해나가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의 탁월한 재능을 알았다면, 어떤 일에서든 그 탁월함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탁월한 자질을 발견하고, 열심히 갈고 닦아야 한다. 대부분 자신의 미네르바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어떤 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다.


미네르바’—개인의 재능과 능력을 뜻하는 이 단어를 나는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제대로 이해했다. 만약 20대에 그 재능을 발견했다면, 어쩌면 세상에 이런 일이-같은 프로그램에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나는 오랜 시간, 나를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내 시선은 늘 타인의 삶을 향해 있었다.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모습을 따라가며 살아야 잘 사는 거라 믿었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갔다. 가족을 위한 삶도, 나를 위한 삶도 아닌 허망한 욕망만 커져갔다. 불만족은 삶 전체를 물들였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배우자도, 아이들도 조금씩 그 불만을 닮아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자질을 찾기 전에 내 분수를 먼저 알아야 했다. 누군가 내 뒷통수를 치지 않았다면, 아마 아직도 착각 속에 살고 있었을 것이다. 지위가 오를수록 착각은 더 깊어지고,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줄 안다. 그런 사람일수록 가장 큰 바보가 되기 쉽다.

배신도 당해봐야 사람을 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리고 가장 독한 암이라는 병을 겪으며, 인간관계는 자연스레 정리되기 시작했다.
겉으로 좋은 사람처럼 보였던 이들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드러났다.
외로운 사람, 그게 바로 나다. 상처받으면서도 자꾸 타인에게 감정을 기대고, 연결하고, 그러다 실망하는 나. 이제는 담담한 척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모든 감정들이 나를 더 깊이 돌아보게 했다.

40대 중반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동안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달려왔던 탓이다. 나를 돌아볼 틈도 없이, 누구도 나를 제대로 바라봐주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버리고, 타인의 삶을 갈망하며 살아왔다는 걸. 그 바보 같은 나의 얼굴을 처음 마주한 건, 몸이 아프기 시작한 바로 그 시점이었다.

이제 나는 특별한 자질을 찾으려 한다. 먼저, 주어진 삶에 순응한다.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예를 들어, 몸이 불편해 누워 있어야 한다면,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유튜브나 저자 강연으로 대신한다. 정상적인 방법이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얼마든지 찾아본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으면, 역지사지로 스스로를 돌아본다. “나는 어땠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상처도 줄어든다. 그리고 나는 글을 쓴다. 아픈 것도, 일상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감사했던 순간들도, 인간관계에서 느낀 점들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써 내려가다 보면, 그것이 곧 힐링의 시간이 된다.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뒀던 자격증 공부책도 다시 들춰본다. 동기부여가 되고, “내가 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떠올리게 된다. 자신의 훌륭한 자질을 알려면, 무엇보다도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예전보다 훨씬 자주, 그리고 깊게 나 자신을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이 시간이 더 소중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나를 알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내 안에 있는 훌륭한 자질이, 이제는 아주 가까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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