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만들었던 카레

엄마라는 존재

by 또 다른세상


3일째, 큰언니가 만들어 놓은 카레를 먹고 있다. 구내염 때문에 딱딱한 음식은 엄두도 못 낸다. 입 안에서는 냄새가 나는 것 같고, 구수한 보리차조차 이상한 맛으로 느껴진다. 그래도 카레만은 참 맛있게 넘어간다.


내일은 드디어 엄마가 퇴원하는 날이다. 엄마의 컨디션이 궁금해 병원에 있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침부터 기운이 없으시단다. 오랫동안 금식하고 죽으로 버텼으니 그럴 만도 하다. 걱정스러운 마음 한편, 그래도 퇴원할 만큼 회복하셨다는 사실이 그저 감사할 뿐이다.


어제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집 안에만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유난히 맑고 따스한 햇살이 방 안까지 깊숙이 들어왔다. 이런 날 집에만 있는 건 괜히 손해 보는 기분이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내려 문을 나서자마자 옷차림이 어색하다는 걸 깨달았다. 대부분 반팔 차림인데, 집 안이 추워 겨울 외투에 모자까지 눌러썼다. 다시 올라가긴 뭐해서 그냥 공원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꽃망울이 몽글몽글 피어오른 공원을 두 바퀴 돌고 내려오니 어느새 점심시간. 며칠 전부터 먹고 싶던 동네 칼국수집 앞에 도착했다. 빈자리가 없어 아쉽게 발걸음을 돌린다. 어차피 집에는 카레가 있고, 아침에 해 놓은 밥도 있으니까.


시장을 지나며 딸기 한 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8천 원. 너무 비싸 군침만 삼키고 또 그냥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손을 씻고, 카레 냄비부터 올렸다. 큰언니가 해준 총각김치 두 조각에 카레밥을 올려 먹으니,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참 좋다.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그런데 먹다 보니 입안이 너무 매웠다.


입안을 달래려다 군고구마 생각이 났다. 고구마 하나를 꺼내 먹었다. 조금은 나아진 것 같다. 그런데 부엌 한편, 총각김치찌개가 냄비 위에서 팔팔 끓고 있다. 국물 조금만 맛볼까 하다가 또 밥 두 숟가락을 떠먹었다. 역시나 매웠다.


배를 두드리며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언니 둘이 간병교대를 마치고 돌아왔다. 오자마자 손은 괜찮냐고 물어본다. 피부과 약 덕분에 조금 나아졌다고 했다.


"뭐 먹고살았냐?"라고 묻기에, "언니 덕에 카레 먹고 잘 살았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언니가 전하는 엄마의 말에 마음이 순간 따뜻해졌다.

"엄마가 그러시더라. 막내 카레 해주고 왔다고. 하니 막내가 만든 카레도 맛있다고."

생각해 보니 엄마가 내 음식을 그렇게 칭찬하신 적은 없었다. 그저 조용히, 아무 말 없이 밥에 비벼 드셨던 기억뿐이다. 그런데 엄마 기억 속에 내 카레 맛이 남아 있다니, 참 뜻밖이었다.


사실 나는 요리를 잘하지 못한다. 특별한 레시피도, 손맛도 없다. 그저 몇 가지 음식만 겨우 해 본 정도다. 반면 언니들은 순식간에 이것저것 뚝딱 만들어낸다. 그런 언니들 음식 대신, 엄마가 내 카레를 기억하고 있다니… 그게 오늘 내 마음을 울렸다.


내일 엄마가 집에 오신다. 이제 더 이상 병원 갈 일 없는 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엄마가 좋아하던 그 맛, 내 방식대로 다시 정성껏 만들어드려야겠다.


엄마가 기억하는 내 카레처럼, 나도 엄마와의 추억을 오래도록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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