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담을 미리 방지하라.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3부 인생은 짧지만 잘살아낸 삶의 기억은 영원하다.


안목

86. 작은 힘으로 막을 수 있는 문제를 크게 키우지 말라

험담을 미리 방지하라. 대중은 머리가 여럿이라 악의적인 눈도 많고, 중상하는 혀도 많다. 험담이 돌기 시작하면 좋았던 평판도 떨어진다. 보통의 험담은 눈에 띄는 약점이나 터무니없는 결점 때문에 생기는데, 그것이 소문내기 좋은 재료이기 때문이다.

작은 힘으로도 미리 막을 수 있는 문제를 크게 키우지 않는 것, 그것은 내가 살아오며 얻은 가장 큰 교훈 중 하나다.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말은 바람과 같아서, 처음에는 미약한 숨결이었지만 어느새 폭풍으로 변해 버리곤 한다. 험담이란 특히 그렇다. 대중은 머리가 여럿이라 그만큼 악의적인 눈도 많고, 중상하는 혀도 많다. 한 번 돌기 시작한 험담은 제 발로 달리며 과장되고 변형돼, 그 사람의 평판을 순식간에 떨어뜨린다. 그것은 마치 작은 불씨가 숲을 삼켜버리는 것과 같다.


나는 이런 경험을 수없이 보았다. 보통의 험담은 눈에 띄는 약점이나 터무니없는 결점 때문에 시작된다. 그 약점이 소문내기 좋은 재료가 되고, 아무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실체 없는 이야기들이 점점 살이 붙는다. 그렇게 보면 약점이나 결점이 조금도 없는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다. 그래서 그 부분을 스스로 어떻게 좁혀 나가고, 어떻게 다루는지가 결국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가 된다.


나도 한 사람으로서 약점과 결점을 안고 있다. 최근 몇 년은 그 사실을 더 깊이 체감한 시기였다.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돌보지 못했던 건강을 되찾기 위해, 요즘 나는 조금씩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천천히, 한 발 한 발, 내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연습이다. 하지만 이 걷기 운동이 단순한 운동만은 아니다. 그것은 내 안의 두려움과 불안을 조금씩 극복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나는 삼중음성유방암으로 전절제와 곽청술 수술을 받았다. 왼쪽 팔은 여전히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진통제를 복용하고, 림프부종 방지약도 매일 챙겨 먹는다. 경험자들은 시간이 약이라고 말한다. 머리로는 안다. 그러나 몸으로는 쉽지 않다. 길을 걷다가도 사람과 스칠 것 같은 순간이 오면 본능적으로 움찔한다. 부딪치기라도 하면 팔이 더 다칠까, 통증이 심해질까, 그 생각이 나를 얼어붙게 만든다. 나도 모르게 세상과 거리를 두게 된다.


지인들은 내 건강 상태에 대해 종종 물어온다. 그들의 관심과 걱정은 분명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 질문에 사실 그대로 대답해 왔다. 병에 걸린 사람에게 “괜찮냐”고 묻는 마음이야말로 진심이니까. 그러나 그 대화는 늘 아픈 이야기로 시작해서 아픈 이야기로 끝나곤 했다. 어느새 내가 하는 말이 두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말들이 어떻게 와전될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건강한 몸으로 근무할 때, 나는 이미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아픈 선배들의 사정이, 병세가, 가정사가 다른 사람들 입을 거치며 조금씩 변형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을. 그때는 그저 안타깝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그 자리에 내가 서 보니 그 두려움이 훨씬 크게 다가왔다.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두려울 때가 있다. 내가 믿고 내 이야기를 털어놓은 사람이 내 마음과는 전혀 다른 언어로 나를 전할 때, 그것은 고마운 마음이 상처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몸이 아픈 것도 큰 고통인데, 주변 사람들에게서 이차적으로 느끼는 배신감은 또 다른 상처를 만든다. ‘아픈 몸’보다 ‘흔들리는 마음’이 더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나 자신부터, 내가 아는 주변 사람들의 상황에 대해서도 함부로 입을 열지 말자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는 것과, 타인의 삶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살아가면서 혀는 어쩌면 칼보다 더 날카롭다는 것을 점점 더 절감한다. 칼은 물리적인 상처를 남기지만, 혀는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는 잘 아물지도 않고, 시간이 지나도 흔적이 남는다. 말을 전하는 것과 말에 책임을 지는 것 사이에는 깊은 골이 있다. 나는 이제야 그 사실을 뼈저리게 배우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완전히 차단하고 살 수는 없다. 여전히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위로받고 살아간다. 내가 걷기 운동을 하며 마주치는 이웃들의 미소, 지인들의 안부 전화 한 통이 나를 일으켜 세워 준다. 다만 그 관계 속에서 내가 스스로 지켜야 할 경계와 언어를 더 조심스럽게 다루려 한다. 상대에게 솔직하되, 내 삶의 가장 아픈 부분을 어떻게, 어디까지, 누구에게 전할지를 신중히 결정하는 것, 그것이 내 건강과 마음을 함께 지키는 일임을 이제야 알겠다.


이제 나는 작은 힘으로도 큰 문제를 막는 연습을 하고 있다. 하루하루 걷기 운동을 하며 내 몸의 균형을 되찾듯, 내 말의 균형도 되찾으려 한다. 남을 향한 말, 나를 향한 말이 쉽게 흘러나가지 않도록, 먼저 한 번 더 되새기며 내 마음속에 잠깐 머물게 한다. 그 잠깐의 멈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막는 방패가 되고, 나에게는 더 깊은 평안이 된다.


살다 보면 누구나 약점이 있고, 누구나 결점을 가진다. 그것을 덮기보다 스스로 다루는 방식, 스스로 좁혀 나가는 태도가 결국 그 사람의 품격이 된다. 그리고 그 품격은 말 한마디, 시선 한 번, 행동 하나에서 드러난다.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나의 병도, 나의 두려움도, 나의 삶도. 하지만 그 배움 속에서 한 가지 확실히 얻은 것이 있다. 혀는 칼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치유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칼이 아닌 치유가 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내 말을 다듬는다. 내 삶을 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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