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엄마는 “민생지원금이 나오면 맛있는 점심을 사야겠다”는 말을 계속하셨다. 처음엔 추어탕이 이야기로 나왔고, 그다음엔 샤브샤브, 또 오랜만에 고기를 먹자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가족 누구도 자신의 민생지원금으로 그동안 수고한 요양사님과 큰언니, 그리고 아픈 나에게 한 끼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역시 삶의 지혜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친정엄마뿐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보니 엄마의 컨디션이 어제보다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대신 천천히 민생지원금 신청을 해보기로 했다. 사실 엄마는 전날 요양사님과 ㅇㅇ은행까지 갔었는데, 해당일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되돌아오셨다고 한다. 휠체어를 밀고 더운 낮길을 이동하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그 생각에 나는 위임장을 준비해 대리 신청을 해 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가족관계증명서와 신분증이 필요했다. 서류를 발급받고 있는데 내 뒤에 대기하던 어르신이 “아줌마, 도장도 가져오라던데요” 하고 알려주었다. 그는 동사무소를 갔다가 집에 들렀다 다시 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도장을 챙겨 나왔다. 그리고 ㅇㅇ은행까지 20분을 걸어갔다. 날씨는 습하지 않았지만 뜨거웠다. 엄마와 요양사님이 힘들게 오시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은행에 도착해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다가 순서가 되어 대리 신청을 요청하자, 창구 직원은 “ㅇㅇ은행은 대리 업무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요양사님께 연락을 드렸다.
근처에서 산책하시던 중이라 금방 도착하셨지만, 힘들게 걸어오게 해서 미안한 마음이 컸다. 업무를 마치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어 있었다. 가족들이 자주 가던 소고기집으로 향했다. 큰언니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식당으로 오라고 했다. 두 분을 식당 대기실에 모셔놓고, 길을 잘 모르는 언니가 걱정돼 밖으로 나가 기다렸다가 모두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가 주문을 했다.
엄마의 마음은 그동안 고생한 요양사님께 명절 선물처럼 소고기를 사드리고 싶은 것이었다. 덕분에 언니와 나도 함께 맛있는 고기를 먹게 되었다. 꽃살과 생갈비살이 나오자 언니는 잘 익혀 엄마 접시에, 요양사님 접시에, 내 접시에 차례로 놓아주었다. 나는 맛있게 드시는지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았다.
식사 중에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민생지원금은 내일부터 사용 가능한데 어떡하지?”
엄마는 “내 카드 써도 괜찮아”라며 웃으셨다. 처음으로 만든 체크카드를 꺼내 드는 모습이 어쩐지 대견해 보였다. 이제는 시골 농사일에 매여 은행업무 볼 시간이 없는 시골 할머니가 아니라,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고 있는 멋진 엄마다.
늘 “내가 사줄게” 하셔도 결국 자식들이 계산을 맡아왔기에 마음이 편치 않으셨을 텐데, 이번만큼은 엄마가 직접 계산을 하셨다. 고기도, 냉면도, 커피도, 박하사탕도 민생지원금 덕분에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가까운 사람들과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상황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많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외식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다음에는 내가 더 맛있는 것을 대접하고 싶다. 걷기 힘든 엄마와 함께하는 외식은 크다면 큰 이벤트다. 풍경 좋은 멋진 곳으로 모시고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할 수 있을 때, 늦어지기 전에 해보리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