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서로를 이해해 가는 훈련이다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3부 인생은 짧지만 잘살아낸 삶의 기억은 영원하다.


안목

109. 거친 기질을 제어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죄로 만든다.

비난하지 말라. 세상에는 유독 거친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사소한 일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단호하게 말하며, 때로는 타인을 몰아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꼭 악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저 타고난 성정이 그러할 뿐이다. 반면 심성이 고운 사람은 남의 실수를 의도보다는 부주의로 여긴다. 그래서 쉽게 용서하고, 마음의 문을 닫지 않는다.


처음 학교에 들어갔을 때가 생각난다. 나이가 들어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이 설레면서도 두려웠다. 사회복지학과 25기로 입학한 우리는 스무 명 남짓한 신입생들이었다. 오랜만의 교정은 낯설었고, 교수님과 학생들 앞에서 인사하는 일조차 어색했다. 입학식과 신입생 환영회가 있던 날, 나는 조용히 그 자리를 지켜보았다. 교실은 풍선과 화환으로 꾸며져 있었고, 선배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책상 배치부터 음식 세팅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분위기가 팽팽해졌다. 마이크를 잡은 선배의 목소리가 떨리자, 옆에서 누군가 “좀 더 크게 말하세요, 음악도 제대로 맞춰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10분 뒤면 환영식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총학생회장과 총무부장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주임교수님이 도착하자 모두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진행이 매끄럽지 않자 잔소리도 이어졌다. 신입생인 우리는 사정을 알지 못한 채 괜히 움츠러들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꾸중을 듣는 걸까.’ 그날 이후 잠시나마 ‘다음 학기 등록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스쳤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졸업반이 된 지금, 나는 그날의 장면을 다르게 바라본다. 올해 신입생 환영식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그때의 선배들이 이해되었다. 그들이 화를 냈던 이유는 완벽주의나 권위 때문이 아니라, ‘사고를 막기 위한 집중’이었다. 사람 많은 자리에서는 사소한 부주의가 큰 문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환영식에서 우리는 여유로웠다. 미리 역할을 분담했고, 서로를 존중하며 준비했다. 교수님들과의 소통도 원활했고, 신입생들도 긴장보다는 설렘이 가득했다. 행사 내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주임교수님은 “오늘은 큰소리 낼 일이 없네”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신입생 때 꾸중을 듣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만약 그때의 혼란과 긴장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처럼 서로를 배려하는 분위기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삶의 많은 순간이 그렇다. 어떤 일은 그때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억울하기도 하고, 상처로 남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속에 담긴 이유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성장의 과정이다.


나는 이제 안다. 거친 기질은 때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본능일 수 있다. 다만 그 기질이 제어되지 않으면 모든 것을 죄로 만든다. 반대로 너무 유순하기만 해도 책임을 회피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단호함 속에 따뜻함을, 엄격함 속에 배려를 담는 일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함부로 비난하지 말자. 그 순간의 행동 뒤에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더더욱 서로의 미숙함을 품어야 한다.


결국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함이다. 신입생 때 꾸중을 듣던 내가 이제 후배들에게 미소를 건네듯, 세상도 그렇게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거친 마음을 다스리고, 심성이 고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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