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3부 인생은 짧지만 잘살아낸 삶의 기억은 영원하다.
안목
110. 사람들이 당신에게 등을 돌릴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사람들이 내게 등을 돌릴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해가 완전히 저물 때까지 머뭇거리지 말라. 지혜로운 사람의 처세에는 ‘버림받기 전에 먼저 버려라’는 말이 있다. 언뜻 냉정하게 들리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을 지키는 법이다. 미인은 영리하게 거울을 먼저 깨뜨린다. 나중에 실망한 얼굴을 마주하며 괴로워하지 않기 위해서다.
인생은 언제나 예상 밖으로 흘러간다. 그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병에 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어쩌면 병이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오만했을지도 모른다. 자연의 섭리를 다 안다고 착각했고, 그 속에서 내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좋은 길만이 내 인생의 길이라고, 그것만이 옳다고 생각했다. 가족에게 헌신하고, 회사를 위해 일하며, 내 몸을 갈아 넣는 것을 ‘성실’이라 여겼다. 그렇게 꿈꾸며 살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것이 나를 소모시키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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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처에는 이천 명이 넘는 이름이 있다. 그러나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럼에도 아직 삭제하지 못한다. 병을 얻고 휴직을 하며 치료에 전념한 지 벌써 열 달, 올해 들어 병원에 간 횟수가 내 인생의 어떤 시기보다 많았다. 회사에 30년, 학교에 16년, 결혼생활은 20년이 넘었다. 긴 세월 속에서 쌓인 관계들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사람과의 관계는 필요에 따라 연결된 끈일까? 아니면 진심의 흔적이 남은 인연일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가끔은 반가운 이름이 휴대폰 화면에 뜬다. 짧은 안부, 단조로운 일상의 대화, 그리고 곧 끝나는 통화. 아픈 사람에게 길게 할 말은 많지 않다. 그 마음을 안다. 그래서 미워하지 않는다.
이번 추석에는 열 명 정도에게만 인사를 보냈다. 예전 같으면 수십 명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바빴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더 이상 손이 가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서운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다. 그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명절을 보냈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단순해진 마음이 편했다. 건강하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내가 먼저 등을 돌리기 전에 이미 그들이 떠났기 때문일까?
스스로 영리하지 못하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누구나 자기 삶을 살아내느라 바쁘다는 것을. 나만 아픈 것이 아니고, 나만 힘든 것이 아니다. 그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싸우고, 견디고, 살아간다. 내가 병상에서 하루를 버티듯이 그들도 저마다의 이유로 버틴다. 그래서 원망보다는 이해가 남는다.
하루하루가 예측할 수 없는 삶 속에서 인간관계도 다르지 않다. 언제 멀어질지, 언제 다시 가까워질지 모른다. 나는 먼저 등을 돌리지 못했지만, 이제는 억지로 붙잡지도 않는다. 사람마다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이 있다. 각자의 삶을 꾸려가며, 세상 속에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서로에게 무언가를 해 준다고 믿는 건 어쩌면 착각이다. 인간관계의 시작은 기대에서 비롯되고, 그 기대가 무너질 때 실망이 생긴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는다면 관계는 의외로 오래 간다. 문제는 그 단순한 진리를 본능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기대고 싶고, 마음을 나누고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연락처를 지우지 못한다. 언젠가 다시 그 이름을 보고 반가워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이제는 알겠다. 관계란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다리지 말고, 억지로 붙잡지 말고,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일. 그것이 병을 통해 내가 배운 또 하나의 지혜다.
인생은 멈추지 않는다. 해가 지고, 또 뜬다. 사람도 그렇게 떠나고, 또 만난다. 중요한 것은 등을 돌린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나 자신이다. 나는 오늘도 나에게 묻는다. “나는 나에게 등을 돌리지 않았는가?”
그 물음에 “아니”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