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성취가 나를 지탱한다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3부 인생은 짧지만 잘살아낸 삶의 기억은 영원하다.


안목


113. 악천후와 역경 대비는 잘 나갈 때 해야 한다.

번영할 때 역경을 대비하라. 여름에 겨울 식량을 준비하는 것이 더 지혜롭고 쉬운 예방책이다. 번영할 때는 호의를 얻기 쉽고, 우정도 넘친다. 따라서 이럴 때 악천후를 대비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이제는 아픈 몸으로 치료에 집중해야 한다. 암 환자의 삶은 몇 년의 시간을 통째로 치료에 바쳐야 한다. 그동안 경제활동은 어렵고, 미래의 불안은 늘 따라다닌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역경 속을 걷고 있다.


나는 스스로 머리가 부족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배움을 놓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 인문계로 가고 싶었지만 “아들도 대학을 못 보내는데 딸을 보낼 수 없다”는 부모의 말에 상업계로 진학했다. 그때 처음으로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나는 아직 세상을 몰랐다. 언니들은 초등학교만 마치고 객지로 나가 일을 했다. 명절마다 예쁜 옷과 선물을 사다 주던 언니들을 그저 부러움의 눈으로만 바라봤다. 그 돈이 얼마나 힘들게 번 돈이었는지, 그 마음이 얼마나 깊었는지 몰랐다.


친구들과 비교할수록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부모의 형편을 탓하면서도 정작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그저 가난이 싫고, 내가 초라한 게 싫었다. 그래도 배우는 일은 놓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족함이 더 선명히 보였다. 그래서 어학, 운동, 독서, 공부 등 돈이 되지 않아도 배움을 이어갔다. 배움은 내게 작은 위로이자 버팀목이었다.


얼마 전, 고등학교 때 1등 하던 친구를 만났다. 여전히 그녀는 배움의 길 위에 있었다. 수화자격증, 평생교육사 자격증까지— 이미 20년 전에 따두었다고 했다. 역시 공부 잘하던 아이는 다르구나 싶었다. 내가 어렵게 땄던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이 그녀에겐 커트라인 점수였다고 했다. 웃음이 나왔지만, 그보다 더 큰 감정은 ‘존경’이었다. 그녀는 성취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었다.


올해, 건강이 무너졌다. 그러나 배움은 멈추지 않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을 땐 누워서 인터넷 강의를 듣고, 걸을 수 있을 땐 학교로 향한다. 무언가를 하든 하지 않든, 시간은 흘러간다. 그렇다면 나는 내 방식대로, 내 속도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은 성취가 하루를 버티게 한다. 누군가는 빠르게 달려가지만, 나는 천천히 걷는다. 내 형편에 맞게, 내 몸의 리듬에 맞게, 조금씩 쌓아간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지금의 악천후도 언젠가는 지나가리라 믿는다.

나는 여전히 배우는 사람이다.

역경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번영이 없어도, 나는 나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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