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4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가장 위대한 일이다.
관계
126. 친구들 사이라도 잘못을 털어놓는 일은 주의하라.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감출 줄 모르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그 말이 조금은 냉정하게 들렸다. 잘못을 숨기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용기라고 배워왔으니까.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삶의 무게가 쌓이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어떤 일은 굳이 말하지 않아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때로는 침묵이 나를 지켜주는 방패가 되기도 한다.
남편이 작은 돈가스집을 열었을 때, 나는 그 일에 그다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대출을 받아야 했고, 투자금에 비해 현실적인 계획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남편이 꼭 해보고 싶다 하니, 믿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오픈한 지 석 달이 지나도록 생활비 한 푼 가져오는 일이 없었다. 매달 돌아오는 대출 이자가 나를 압박했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르겠고, 장사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어느 날 가게를 찾아갔다. 작은 공간 안에 세 명의 직원이 있었다. 남편까지 포함하면 네 명이다. 식탁 사이로 오가는 말소리도, 웃음소리도 없었다. 가게 문은 열려 있는데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직원들은 모두 앉아서 출입구만 바라보고 있었다. 장사가 잘 안 된다는 이유가 단번에 느껴졌다.
그 모습이 못마땅했다.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이렇게 앉아 있지 말고, 전단지라도 나가서 나눠드리면 어떨까요?” 하지만 직원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낯설었다. 남편이 없는 상태라 그런지, 그들은 나를 주인의 아내로서 아닌, 낯선 손님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불편한 공기가 흐르고, 나는 그 공기 속에서 나 혼자만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한 시간이 지나 남편이 가게로 들어왔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왜 와서 잔소리를 하는 거야?” 그 말은 내 가슴을 쿡 찔렀다. 나는 놀랐고, 동시에 서운했다. 집에서도 얼굴 보기 어려운 사람이었는데, 겨우 시간을 내서 왔더니 고맙다는 말은커녕 사람들 앞에서 잔소리라니.
그 순간, 그가 가족이 아니라 남처럼 느껴졌다. “대출 받아달라 할 때는 가족이었잖아. 대출금은 내가 갚아야 하는데, 상황이 어떤지 보러 온 게 뭐가 잘못이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단호하게 말했다. “가게 일은 나한테 맡겨. 간섭하지 마.” 그 말은 벽처럼 차가웠다. 결국 나는 버티지 못하고 외쳤다. “이런 식으로 장사하려면 다 그만둬!” 그리고 문을 박차고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찬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화가 치밀었지만, 속에서는 이미 후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럴 게 아닌데… 왜 또 이렇게 되었을까.’ 그날 저녁,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남편 이야기를 쏟아냈다. 서운했던 말, 답답했던 상황, 그리고 억울함까지 모조리 털어놓았다. 친구는 내 말을 다 듣더니 한마디 했다. “그런 사람으로 안 봤는데, 너무한다.”
그 말이 위로처럼 들렸다. 누군가 내 편이 되어주는 그 순간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때의 대화를 떠올리면 얼굴이 붉어진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남편과의 다툼은 집에서 차분히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감정이 앞서 친구에게 털어놓은 말들이 결국은 내 마음을 더 어지럽혔다. 친구의 위로는 잠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 이야기는 다른 기억으로 옮겨 다닐 수도 있었다. 내가 내 삶을 스스로 다스려야 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날의 나는 급했다. 생활비가 없다는 현실이 불안했고, 나 혼자 모든 걸 감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억울했다. 그 불안과 억울함이 ‘말’로, ‘행동’으로 터져 나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해결책을 찾으려던 게 아니라 내 감정을 폭발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남편의 문제를 지적했지만, 사실은 내 안의 두려움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인생이란 건 결국 자신을 다스리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마음보다, 나의 언어를 조심하는 게 먼저라는 걸 배웠다. 살다 보면 누구나 어리석음을 저지른다. 하지만 진짜 어리석은 사람은 그 어리석음을 감출 줄 모르는 사람이다. 나는 그 말을 이제야 이해한다.
친구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 건 일시적인 위로가 될 수는 있지만, 결국 내 문제는 내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감정을 풀기 위해 내 이야기를 남에게 흘리는 순간, 그 이야기는 나를 떠나 다른 해석을 입고 돌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는 조용히 내 안에서 정리하는 연습을 한다.
실수했을 때는 오래 붙잡지 않는다. 하루 정도는 마음껏 후회하고, 그다음 날은 잊기로 한다.
잊는다는 건 무책임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누구에게나 부끄러운 기억은 있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삶이 자꾸 과거로만 흘러간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가끔은 참지 못하고, 가끔은 또다시 말로 상처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모든 것이 지나고 나면 결국 내가 스스로를 다독여야 한다는 걸.
그래서 나는 내 잘못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보다는, 나 자신에게만 조용히 고백한다. 그 고백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용서다. 살다 보면 누구나 관계 속에서 상처를 주고받는다. 중요한 건,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느냐이다. 나는 이제, 숨기고 잊는 법을 배우고 있다.
숨긴다는 건 거짓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는 일이고, 잊는다는 건 외면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한 다짐이다. 가끔은 그날의 돈가스집을 떠올린다. 햇살이 스며들던 가게, 멈춘 듯한 공기, 남편의 표정, 그리고 나의 성급했던 말들. 그 모든 장면이 부끄럽지만, 동시에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날의 나를 완전히 잊지는 않되, 그 부끄러움을 품고 더 나은 나로 나아간다. 그게 내가 배운 삶의 법칙이다. 숨기고, 잊고, 다시 일어서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