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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손가락을 감추는 사람들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4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가장 위대한 일이다.

관계

145.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약점을 보이지 않는다.

다친 손가락을 감추는 사람들


"다친 손가락을 보여주지 말라. 그러면 모두가 그것을 건드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약점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다쳤다고 불평하면 악의는 항상 우리를 아프게 하거나 약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개인적 결점이든 유전적 결점이든, 지혜로운 사람은 모른 척하고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때로는 운명까지도 가장 아픈 곳을 찾아 상처 주기를 즐기는 듯하다.


하지만 다친 마음을 혼자 치유하려 하면 할수록, 내 몸은 더 약해지고 마음도 약해진다. 주변 사람들의 온정에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고,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할수록 상처 부위를 더 찌르는 듯하다.

교회 일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일반 카페 2층 건물 앞에 섰다. 바로 집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책 읽고 가는 것으로 선택했다. 교회당에서 울렁거림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많고 닫힌 공간이라 속이 더 답답했다. 중간에 앉아 있어서 나갈 수도 없는 상태로, 겨우 그 시간을 견디고 나올 수 있었다. 열정적인 목사님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도 시간이 되자 성도들은 모두 일대일로 예수님과 미팅을 했다. 큰 소리로 기도하는 사람, 고개를 숙이고 작은 소리로 본인만 들리도록 하는 사람, 눈물을 흘리는 사람, 눈을 그저 감고 있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이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지만, 극히 개인적인 기도였다.


걸쭉한 가래 소리,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들의 말과 기침이 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 또한 환자로 마스크를 하고 모자를 쓴 채 두 손을 모았다. 힘을 달라고 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느끼며 기도했다. 그것도 잠시, 토하러 나가야 하나 참아야 하나 순간 고민하기도 했다.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한 후 성도들은 우르르 나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앞이 다시 치열했다. 서로 먼저 타고 내려가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어른, 아이, 아픈 사람 할 것 없이 똑같은 눈빛이었다. 이렇게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진정으로 교회에 다니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교회를 벗어나 카페에 와서, 페퍼민트가 울렁거림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 주문했다. 금액은 제법 비싼 편이었다. 2층이 조용한 분위기였으나 그쪽으로 올라갈 힘이 없었다.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방을 내려놓는데 책 한 권이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아플 때는 좋아하고 삶에 이로운 책도 부담이 된다.

몸의 상태를 일일이 이야기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에게 어떤 위로를 기대하며 말하는 것도 힘들다. 원하는 대로 돌아오기란 어렵다. 고개를 끄덕이지만, 나의 몸 상태나 상대방의 따뜻한 위로를 내가 만족하기 어렵다.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가족여행을 갔던 영상을 보내주었다. 엄마와 딸이 미국에 가서 재미있게 보낸 영상이다. 다양한 상품을 구경하고 착용해 보고, 놀이기구도 타고, 친구처럼 사진도 찍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내가 엄마와 사이가 안 좋다고 하니, 이 영상을 보고 기분 풀라고 말한다.


다친 손가락을 감추며 사는 것이 지혜일까. 아니면 그 상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위로받는 것이 용기일까. 오늘도 나는 마스크 뒤에 얼굴을 숨기고, 토할 것 같은 속을 참으며, 친구가 보내준 행복한 영상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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