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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을 살펴보라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4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가장 위대한 일이다.

관계

146. 피상적인 사람들은 속임수에 빨리 넘어간다.

내면을 살펴보라. 보통 사물은 눈에 보이는 것과 매우 다르다. 껍질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무지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진리가 드러난다. 거짓은 늘 모든 일에 가장 먼저 와서, 어리석은 사람을 계속 피상적인 것에 머물게 한다.


보통 사물은 눈에 보이는 것과 매우 다르다. 껍질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무지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진리가 드러난다. 거짓은 늘 모든 일에 가장 먼저 와서, 어리석은 사람을 계속 피상적인 것에 머물게 한다.

"처음 항암할 때보다는 나은 것 같다.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그 소리에 놀랐다. 이것이 엄마가 본 전부일까? 의문이 들었다. 겉으로 움직이는 것만 보고 괜찮다고 판단하는 것.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겨울용 옷과 모자, 장갑이 어울리는 날이다. 갑작스런 추위에 시장 골목 오뎅 국물 향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한쪽에는 매운맛, 순한맛이 나뉘어 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도 산더미처럼 쌓여 군침을 돌게 한다. 새벽부터 병원 행차를 했더니 점심시간은 좀 더 기다려야 하지만, 먹어야겠다.


중년의 여자 손님이 한 개를 먹고 국물을 종이컵에 따라서 가버린다. 연세 드신 남자 어르신 두 분이 종이컵에 꼬불이 오뎅을 담아 호호 불어가며 먹고 있다. 오동통한 오뎅을 하나 들었다. 종이컵에 받쳐서 한입 물었다. 맵고, 뜨겁고, 말랑함이 느껴지는 순간 추웠던 몸이 사르르 녹는다. 사람이 없는 쪽 오뎅을 들었는데 그건 매운맛이다.


국물까지 먹었다가는 속이 뒤집어질 듯하다. 얼른 순한맛 쪽으로 갔다. 국자로 국물을 따라서 종이컵에 담았다. 오뎅 한입 물고 나서 호호 불어가며 국물을 마셨다. 살살 녹는 맛이 중독성이 있다. 해서 이번엔 순한맛 한 개 더 집어 들었다. 고른 것이 퉁퉁 불은 오뎅이다. 살짝 물었는데, 오뎅 꼬치가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해 먹으려니 오뎅 따로 내 입 따로가 되었다.


꼬치에 오뎅을 확실하게 찔러서 내 입으로 가져갔다. 먹으면서 따뜻하고 시원하네, 하나 더 먹어야겠다. 다시 매운맛을 하나 더 골랐다. 먹다 보니 엄마 생각이 났다. 시장을 수없이 다니면서도 따뜻한 오뎅 한 번 사서 먹지 않았다. 매운맛, 순한맛 두 개씩 포장을 해달라고 했다. 사장님은 국물도 넉넉하게 담아주었다.

항암을 맞으러 가기 전엔 혈관을 잘 찾을 수 있을까가 걱정이었다. 네 번은 주사 바늘을 꽂고 채혈을 하거나 항암을 맞아야 한다. 그 걱정이 태산이었다. 진료 두 시간 전 채혈을 무사히 하고 나서 진료를 기다렸다. 한 가지만 맞으면 되니까. 일찍 집으로 가서 쉬어야겠다.


첫 항암을 받고 나서 오심과 어지럼증이 있었다. 약도 먹고, 음식도 잘 먹었다. 처음부터 지치면 안 된다. 마인드 컨트롤, 혼자 견뎌보자. 결국 혼자 인생이다. 단단히 마음먹자. 더 먹고 항암 일정에 문제 없도록 해야지 마음먹고 행동했다. 건강한 사람처럼 대화를 하고, 일상에 해야 할 일은 그대로 해나갔다.


드디어 진료 시간이다. 호중구 수치가 900은 되어야 하는데 600밖에 안 나와서 오늘은 항암이 힘들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 일정이 밀릴 거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순간 입이 벌어지고, 어... 그다음 어떻게 하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의료진은 다양한 경험으로 지금 현재의 나에게 맞는 처방을 내린다.


오늘 예상했던 일정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백혈구 주사를 맞아야 하고, 케모포트 예약을 해야 한다. 다음 주 올 때는 가슴 사진도 찍고 오라고 한다. 그들이 말하는 대로 주사를 맞고 예약 장소 가서 예약을 하고 집으로 향한다.


시장에 가서 버섯을 사온 엄마는 데쳐서 초고추장을 찍어 먹으라고 한ㄷ. 오뎅을 사 가지고 집에 왔을 때 있는 반찬을 꺼내 놓는 것도 힘들다. 왜 안 먹냐는 성화가 시작이다.


"지난번보다는 나은 것 같은데, 움직여서 뭐라도 해서 먹으라고."

지금은 매운 것도 먹을 수 없는데, 우리 엄마의 기대가 큰데 그 역할을 할 수가 없다.

함께 사는 엄마가 보는 눈은 여기까지인가 보다.


움직일 수 있다고 괜찮은 것이 아니다. 채혈 한 번 하는 것도, 오뎅 한 개 먹는 것도, 반찬을 꺼내 놓는 것도 모두 힘을 쥐어짜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움직이는 것만 본다. 그 안의 고통은 보지 못한다.


내면을 살펴보라는 말은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안의 진실은 다르다. 거짓은 늘 가장 먼저 와서 사람을 피상적인 것에 머물게 한다. 엄마도, 나도, 우리 모두는 껍질 속으로 들어가야만 진짜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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