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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러운 말의 온도

by 또 다른세상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4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가장 위대한 일이다.

관계

148. 말할 대는 유창함보다는 신중함이 더 중요하다.

대화의 기술을 갖추라. 대화의기술은 온전한 사람 됨을 드러내는 척도다. 대화는 인간의 모든 삶의 행위 중 가장 일상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가장 큰 주의가 요구된다.


아프고 난 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말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화려한 표현을 쏟아내고 유창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한 문장이라도 진심을 담아 건네는 일이 훨씬 조심스럽고 무겁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우고 있다.


항암 치료가 시작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걱정과 응원을 건네왔다.

누군가는 긴 메시지를 보내고, 누군가는 단 한 문장을 건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래 기억에 남는 말은 길고 대단한 말이 아니었다.

“기다릴게요.”

“걱정 말아요, 우리는 응원하고 있어요.”

그리고 “다시 돌아올 자리가 있으니까요.”

짧지만 단단한 말들이 내 하루를 붙잡아 주었다. 아픈 몸의 균형을 잃고 쓰러질 것 같던 날에도, 그 말들이 숨 쉬게 했다.


위원장님과 부위원장님께서 직접 만나 주시고, 여러 차례 같은 말을 건네셨다.

“건강을 먼저 생각하세요.”

“다시 복귀하시길 기다리겠습니다.”

크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은 어떤 약보다 진하게 스며들었다. 마치 긴 겨울을 지나온 몸 위에 따뜻한 손을 살며시 얹어 주는 듯한 온기였다. 짧은 말 속에 누군가의 마음이 얼마나 크게 담겨 있는지, 그 순간 또 하나 배웠다.


그 자리에서 두 분을 보내드리고 혼자 남았을 때, 나는 두 손을 모았다.

감사의 말을 어떻게 해야 온전히 담길 수 있을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내 진심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전해질 수 있을까.

눈물이 먼저 흐르고, 말은 나중에야 따라왔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때 더 조심스러워졌다.

과하게 위로하지 않으려 하고,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않으려 한다.


갈 곳을 잃은 마음 앞에서 말은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 되는 것이란 것도 배웠다.

말 한마디는 때로 약이 되고, 때로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항암 치료 중인 지금, 힘든 날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의 말이 나를 살렸기 때문이다.


유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화려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진심을 담아 천천히, 신중하게 건네면 된다.


언젠가 이 빚을 갚고 싶다. 지금처럼 아프고 힘든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쉽지 않은 말을 가볍게 꺼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급하게 위로하지 않고, 충분히 기다려 주고, 가장 필요한 순간에 조심스럽지만 따뜻한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나는 배운다.

말은 잘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건네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창함보다 진심이 더 멀리 닿는다.


오늘도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 조심스러움 속에서 사람을 살리는 온도를 다시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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