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7부 인생의 진정한 공부를 마지막으로 미루지 말라
온전함
246. 변명은 의심을 일깨울 뿐이다.
요구하지 않은 한, 절대 스스로 변명하지 말라. 그리고 요청받더라도, 너무 과하게 변명하면 비난을 받는다. 또한, 적절할 때가 되기도 전에 변명한다면 곧 자진을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의심을 없애기 위해 진실한 행동으로 노력해야 한다.
오늘은 개강하는 날이다. 집을 나서려는데 엄마가 한마디 하신다. “그 나이에 뭘 배운다고 학교를 가니?” 대답 대신 웃으며 문을 나섰다. 오리엔테이션은 오전 9시. 학교 건물이 크다기에 길을 헤맬 것을 예상하고 아침 7시 30분 버스를 탔다. 한동안 버스를 탈 일이 없었다. 집 근처는 대부분 걸어 다녔고, 병원을 갈 때는 지하철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학교에 가려면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한다.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버스가 한강 다리를 건널 때였다. 아침 햇살이 창가로 쏟아져 들어왔다. 강을 중심으로 양쪽에 늘어선 빌딩들, 물결 위에 반짝이는 빛. 긴장도 되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설레었다. 20분쯤 지나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아침을 먹고 바로 차를 타서 그런가 싶었다. 창가 자리로 옮겨 앉았다. 영하 2도의 날씨라 창문을 닫아도 차가운 바람이 느껴졌다. 조금씩 속이 가라앉았다. 버스는 천천히 가다가 갑자기 속도를 내고, 다시 브레이크를 밟기를 반복했다. 기사님의 운전 습관이 그대로 전해졌다.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합정역까지 겨우 버티다 내렸다.
학교에 도착하니 학생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을 따라갔다. 속 울렁거림도 가라앉힐 겸 조금 걸어야 했다. 한참을 따라갔는데 갑자기 일반 가정집이 나타났다. 길을 잘못 들었다. 다시 돌아와 주변을 살폈다. 그때 나이 들어 보이는 두 분이 손을 잡고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따라 올라가 보니 오리엔테이션 장소가 있는 건물 2층이었다. 뒤이어 학생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키가 작고 외소한 학장님이 인사를 했다. “이곳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인상이 참 따뜻했다. 저 자리까지 오기까지 어떤 시간을 살아오셨을까 잠시 궁금해졌다. 이어 주임 교수님 소개와 학과 안내가 이어졌다. 교학처 직원이 학교 시스템과 앱 사용법을 설명했다. 다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머릿속에 물음표만 떠올랐다.
잠깐 설명을 듣고 앱을 열어 보았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결국 교학처에 가서 하나하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알려주는 대로 따라 하니 그제야 사용이 가능해졌다. 혼자서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답답하기도 했다. 첫 수업에서는 교수님 소개와 수업 계획, 그리고 학생들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가장 놀라운 것은 학생들의 나이였다. 내가 제일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사회복지 현장에서 오래 일한 분들이 많았다. 아동 관련 일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회사에 다니다 병으로 휴직 중인 사람. 하지만 이곳에는 아픈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계속 아픈 이야기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자기소개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환자라는 말을 꺼내지 않기로 했다. 수업 계획을 들으며 공통점을 발견했다. 대부분 토론과 발표 중심 수업이었다.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처럼 느껴졌다.
첫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아픈 사람이 아니다. 나는 지금 공부하는 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