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 현대지성
1부 인간의 위대함은 운이 아니라
미덕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미덕
011. 하나라도 배울게 있다면 나의 스승이다.
배울 게 있는 사람과 교제하라. 친구와의 교제가 지식을 얻는 학교가 되게 하고, 대화는 교양 있는 배움이 되게 하라.
요즘 영숙 언니는 “돈이 없다”고 자주 말한다. 학교에서 실습비로 30만 원, 회비로 5만 원을 입금하라고 했단다. 동네 식당에서 하루 두 시간씩 설거지하며 시급 만 원을 받는데, 그것으론 빠듯하다고 했다. 토요일 수업이 끝나면 양평에 있는 지인 식당에도 가서 일손을 돕고, 수고비를 조금 받는다. 하지만 이 일도 5월이면 그만둬야 한다고 했다.
학교생활이 즐거운 영숙 언니는 교실에만 오면 말이 많아진다. 쉴 틈 없이 말을 하니, 주변에서는 “또 언니가 말한다”고 핀잔을 준다. 나는 결석을 자주 해서 분위기를 잘 모르지만, 어쩌다 등교하면 영숙 언니는 내게 유독 말을 많이 건넨다. 못한 이야기가 쌓였는지, 나는 그저 조용히 듣는 편이다.
어느 날은 한 학우가 “이제 언니 목소리도 듣기 싫다”고 노골적으로 말해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유일하게 금·토요일 학교에 나와 말하는 게 전부라는 영숙 언니. 단체생활에서 적당히 하자는 학우들과의 갈등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어느 날, 언니가 갑자기 “우리 동네 맛집 칼국수 먹자”고 했다. 전화를 하니 알바를 마치고 오후 3시에 보자고 한다. 식당에서 만난 언니는 가족 이야기, 학교 이야기, 일터 이야기 등등 쉬지 않고 말했다. 혼잣말도 하고, 기분 좋게 웃기도 한다.
그러더니 “오늘 알바비로 칼국수 사줄게”라며 계산을 해버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늘 자신의 사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언니이기에 더 부담스러웠다. 혹시 내가 계산할까 봐 미리 계산을 했던 것 같다.
식사 후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단골 카페라며 “블루베리 스무디가 맛있다”고 추천한다. 사실 나는 차가운 것도 잘 못 먹고, 밀가루 음식도 몸에 잘 안 받는다. 그래도 언니의 마음을 알기에 함께했다.
언니는 블루베리 스무디를, 나는 따뜻한 곡물라떼를 주문했다. 자리에 앉자 언니는 이 카페 칭찬을 늘어놓는다. “얼마 전엔 딸이랑 와서 맛있게 먹었어”라며 웃는다. 주인도 언니를 반갑게 맞이했다.
음료가 나왔다. 나는 곡물라떼를 한 모금 마시다 토할 뻔했다. 오래된 듯한 특이한 냄새가 났다. 언니에게 맛보라고 했다. 언니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인은 “그럴 리 없다”고 하더니, 이내 “고객이 이상하다고 하면 그게 맞는 거”라며 다른 음료로 바꿔주었다.
순수한 영숙 언니의 따뜻한 마음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진심,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픈 사람에게는, 조금 더 신중하고 섬세하게 다가오는 배려도 필요하다. 앞으로 지인이 아프다면 내가 생각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