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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Apr 28. 2021

툭 치면 터질 것 같은 슬픔

다시 툭툭 털고 일어서려면

시험으로 치자면 5수째이다. 해야 할 일들을 성실하게 다 했고 시간도 잘 지켰고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어제 성적표를 받았다. '0점'. 50점도 있고, 70점도 있을 텐데 0점이다. 매번, 시험에서 많은 노력을 쏟아놓아도 결과는 냉정하다. 중간은 없다. 그냥 빵점인 것이다.




아침, 엄마는 6시에 날 깨우셨다. 병원에 시간 맞춰 가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병원에 갈 때도 예쁘게 하고 가야 한다며, 며칠 전에 사 주신 옷을 꺼내 주셨다. 머리를 감고 나오는데, 머리도 깔끔하게 말려 주셨다. 엄마께서 차려주신 밥을 맛있게 먹고, 나름 예뻐 보이게 평소 안 그리는 아이라인도 그렸다. 옷을 입고 씩씩하게 병원을 다녀오리라 마음먹고 운전을 했다. 평소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출퇴근 시간이라 조금 밀렸다. 다행히 약속한 시간에 많이 늦지 않게 병원에 도착했다.


그 날 따라, 피검사하시는 선생님께서 혈관을 못 찾으셔서 피 빼느라 고생했다. 처음엔 오른손에 주삿바늘을 꽂으시고 피를 반쯤 뽑더니 바늘이 빠졌다며 주사기를 피 째로 쓰레기통에 넣었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다시 왼쪽 팔에 바늘을 꼽는데, 이제까지 다른 간호사분께서는 한 번도 꼽지 않았던 자리에 주삿바늘을 꼽으셨다. 그러더니 피가 안 나온다면서 주사기를 이리저리 움직이시면서 피스톤을 당겼다 넣었다 당겼다 넣었다 하는데 피가 안 나왔다. 갑자기 공포감이 몰려왔다. 삼 일 전에 임신 테스트 결과 임신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았기에 안 그래도 마음이 어려운데, 간호사님께서 피를 못 빼시니 '내가 왜 이러고 있나'하며 서러움이 북받쳤다. 어린아이처럼 울음이 나왔다. "나 좀 도와주세요!"라는 신호처럼. 다행히, 옆에 베테랑 간호사님께서 오셔서 피를 한 번에 뽑아주셨다. 휴, 살았다. 괜히 병원에 앉아 있는데 눈물이 나와서 피검사 나오기 전까지 자동차 안에 들어가서 혼자서 울었다. 울다 보니 몸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남편에게 연락을 하고, 이 일을 시트콤처럼 이야기하고 웃었다. 남편이 뭐라도 사 먹으라고 해서, 편의점에 가서 두유와 요깃거리를 사서 차에 와서 먹었다. 울다 지쳤는데 음식을 먹으니 조금 힘이 나는 것 같다. 그러던 중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다시 병원으로 들어가 원장님을 뵈었다. 감사하게도 5일 냉동배아가 나왔다고 한다. 수정란 중에서 가장 안 좋은 것을 배양했는데 5일 냉동배아가 나왔으니 이번에 이식한 배아는 아주 좋은 배아일 것이라며 피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하신다. 마음 한쪽 편에 희망을 안고 병원을 나왔다. 고속도로에서 전화를 받을 수 없기에 11시 병원에서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임신이 아니시네요..."

"아, 그럼 혹시 착상은 되었을까요?"

"착상이 안 된 것 같아요."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마음의 대비는 했지만 많이 슬펐다. 만감이 스쳤다. 이번에 그렇게 좋은 배아였는데, 내가 무리해서 임신이 안 된 것일까? 여러 많은 질문들이 올라왔다. 자책이 되기도 했다. 어쩔 수 없다. 결과가 이렇게 나온 것을. 생명이 내 마음대로 오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생명은 인간 소관 밖의 일이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는데, 남편도 마음이 좋지 않은 것 같다. 남편에게 위로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속상한 마음을 다스리며 운전을 해서 친정집에 도착했다. 여러 생각들이 스쳤다. 그러나 오후에 해야 할 일들이 있었기에, 오후 스케줄을 마무리하고 저녁에 참가해야 할 회의를 참가하고 나니, 슬픔이 몰려왔다. 저녁밥도 입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엄마는 10시 넘어 공부 마치고 집에 들어오셔서 내가 저녁을 안 먹은 것을 아시고 저녁을 차려주셨다. 엄마께서 차려주신 저녁밥을 먹고, 살짝만 건드려도 터질 것만 같은 슬픔을 꾹꾹 눌러둔 채, 엄마와 농담을 하며 웃었다. 엄마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자녀를 주실 거라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평소에는 방에 들어가서 잤었는데, 왠지 자꾸만 일렁이는 슬픔을 다독이며, 엄마 옆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또다시 슬픔이 몰려왔다. 어찌할 수 없는 슬픔. 누군가의 한 마디에도 터져버릴 것 같은 눈물샘에서 자꾸만 눈물이 난다. 슬픔을 이겨내려고 코미디 프로그램을 본다. 잠깐 웃지만,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시 눌러 둔 슬픔이 마음 깊은 곳에서 일렁인다.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대학원 졸업 후 연구물도 내고 싶었고, 책도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 어느 하나 된 것이 없다. 아기를 가지고자 최대한 무리하지 않고자 했다. 그러나, 이것도 저것도 되지 않은 채, 난 '0'점에서 좌우로 흔들인다. 아무것도 못 한 것일까? 내 인생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여러 두려움과 슬픔 속에서, '희망'을 찾고자 몸부림친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기도한다.


폭풍이 지나갔다.


이제는, 툭 쳐도 터질 만큼 약하지는 않다.

이겨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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