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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Dec 22. 2021

난임의 시간이 내게 가르쳐 준 것

병원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다

불면증으로 새벽에 잠에서 깨었다. 가슴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 억지로 잠을 청한다. 자는 듯 마는 듯 아침이 되었다. 오늘은 병원 가는 날이다.


급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짐을 챙겨 나왔다. 차 시동을 거는데, 뭔가 심상치 않다. 드드득 거리더니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병원까지 가려면 1시간 넘게 걸리는데, 만감이 스친다. 긴급출동을 불렀더니, 10분 넘게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다행히 늦지 않게 긴급출동 차량이 와 주었다. 차 배터리 충전 후, 병원으로 출발한다.


병원에 도착하니 10분 정도 늦었다. 덕분에 내 앞에는 스무 명가량의 환자분들이 대기하고 계신다. ‘흑, 좀 더 일찍 출발할 것을…’


감사하게도 채취한 난자 4개는 모두 수정되었고, 5일 배양까지 배아가 하나 잘 자라주었다. 그래서 지난번 냉동한 배아 하나와, 이번 냉동 배아 하나 해서 두 개를 다음번에 이식하기로 했다.



집에 와서 푹 쉬었다. 남편에게 가서 시간도 같이 보냈다. 며칠 보냈을까, 다시금 신호탄이 터졌다. 생리 시작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3시간 운전하는데 많이 힘들었다.


그래도 친정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해 주신 따끈한 밥에 몸도, 마음도 녹는다.


연말이 되니 생각이 많아진다


난 올 한 해 잘 살았는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며 자신을 채찍질했지만,

눈에 보이는 열매를 잘 모르겠다.


간절함으로 배아가  이식되고 착상되어 몸도 마음도 건강한 아기를 가질  있길 바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또한 나의 영역이 아니다.


그저, 내가 올 한 해도

건강하게 지낸 것만으로도,

사랑하는 남편과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도 남는 이유이다.


굶지 않았고,

잠도 잘 수 있어 불면증이란 배부른 증상도 겪고,

불면증으로 힘들어도 낮에 쉴 수 있고,

자유롭게 산책도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있고,

얼마나 감사한가.

무엇보다,

생명이 얼마나 귀중한지

다시금 느끼게 한 시간이었다.


난임의 시간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다 감당할 만하기에

내게 주어진 단련의 시간이라면

감사로 받고

감사로 올 한 해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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