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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Feb 18. 2022

고맙다는 말 외엔

사랑의 존재

오늘의 나를 키워준

사랑의 이름 앞엔

고맙다는 말 외엔

할 말이 없습니다

- 사랑의 이름(이해인)


유년 기억이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은 엄마의 이야기로 재구성된다.

   

“네가 다섯 살 때, 유치원에서 가서 수업 참관을 했어. 네가 친구한테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라며 세배하는 법을 가르쳐줬어. 어찌나 똑 부러지던지.”


엄마의 기억 속 나는 똑순이이다. 그렇지만 난 그 장면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최초 기억은 포대기 속에 업혀있는 다섯 살 때의 장면이다. 엄마는 다섯 살이나 된 날 포대기로 칭칭 둘러업고 감기 걸릴까 봐 담요로 날 푹 둘러 씌웠다. 추운 겨울날, 포대기 속은 껌껌하지만 엄마의 온기가 전해진다. 그 시절 엄마는 나의 우주였고, 내 세계의 전부였다.     


난 분리불안이 심했다. 엄마와 조금이라도 떨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유치원에 너무 가고 싶어서 엄마를 졸라서 유치원을 다녔지만, 엄마와 떨어져 있는 것은 싫었다. 그래서 유치원에 엄마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친구들과 놀았다고 한다. 하루는 엄마가 몰래 집으로 왔는데, 내가 울면서 유치원에서 집까지 엄마를 찾아 걸어왔다고 한다.     


부엌도 없는 집에서 우리 가족은 살았다. 주인집 앞에 수도가 있어서 거기 가서 세수도 하고 빨래도 했다. 추운 겨울날, 엄마는 살얼음이 언 물로 빨래를 했다. 엄마의 퉁퉁 부은 벌건 손이 눈에 선하다. 본인은 얼음물로 빨래를 하면서 딸이 찬물로 세수할까 봐 물을 끓여서 미지근한 물로 만든다.


“OO아, 이제 세수하자.”     


엄마는 자전거를 씩씩하게 잘 타셨다. 나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읍내에서 면에 있는 외갓집에 다녀오곤 했다.


“OO아, 노래 불러 볼까?”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 자전거 뒤에서 엄마와 같이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옆에 있으면, 난 행복했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시간이 점점 흘러, 아름답던 엄마의 얼굴에 조금씩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씩씩하게 자전거를 타시던 엄마가 이제는 무릎이 가끔씩 아프다고 하신다. 그렇지만 엄마는 여전히 딸 앞에서 강하다. 밝게 웃으시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친정에 온 딸에게 따뜻한 밥을 해 주신다. 그러면 딸은 아이가 되어 엄마의 사랑 속에서 행복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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