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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Aug 15. 2022

말라간다

내 마음의 갈증

'꿀꺽'

카페에 와서 차 한 모금을 마신다. 목구멍에서 넘기는데, 왜 이리 삼키기가 힘든지. 시럽을 안 타서 그런 것일까? 말차 라테가 쓰디쓰기만 하다. 마치 녹차가루와 우유가 제대로 섞이지 않은 양, 입안은 쓰고 우유는 목구멍을 넘어간다.


'마르는 느낌'

최초로 마르는 느낌에 시달린 것은 대학원 박사과정 중이었다. 잠을 제대로  자고 과제와 시험 준비에 주말을 반납했다. 교감신경이 극도의 긴장 상태에 시달리며 매일을 보냈다. 게다가 박사 2 차에 직장에서 학생들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기도 했기에, 몸이 바짝바짝 말라갔다. 아이들을 강하게 지도할 에너지도, 과제를   에너지도 고갈되어갔다. 살이 쪽쪽 빠졌다. 그러다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이런 마르는 느낌은 최고조에 달했다. 20대의 식욕은 어디에 갔는지, 먹는 것이 힘들었다. 인위적인 호르몬 투여로 몸과 마음은 성치 않았고, 그동안 잠재되었던 아팠던 곳들이 여기저기 반역(?) 일으켰다. 목디스크, 장염 등으로 고생했다. 시험관 시술을 쉬고 있는 지금도  무엇 때문에 이리도 말라가는가?


'쫓기는 자'

무한 경쟁의 사회라고들 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무수한 경쟁 속에서 살아왔다. 학창 시절, 숫자에 집착하며 살았다. 시험 점수, 등수가 마치 나의 가치를 나타내는 양 착각하며 살았다. 어른이 되면 더 이상 경쟁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제보다 나은 나'를 목표로 하지만, 사회에서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마음은 뛰고 있다. 몸은 마음을 따라 주지 못해, 마음은 뛰고 몸은 헉헉댄다.


'방향을 찾지 못해 헤매는 자'

2년 전에 후배가 몬스테라를 선물로 줬다. 식물을 키우는 데에는 잼병이지만, 후배가 선물로 준 식물이라 정성껏 키웠다. 아니, 남편이 정성껏 키워서 키가 쑥쑥 자랐다. 처음에는 젓가락으로 지지대를 만들어 주었고, 어느 정도 위를 향해 잘 자라던 몬스테라가 어느 날부터인지 젓가락보다 훌쩍 커버렸다. 더 이상 젓가락은 지지대의 역할을 상실했고, 몬스테라는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향방 없이 뿌리를 내리고, 뿌리는 흙을 찾지 못해 허공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결국은 몬스테라를 이렇게 키워서는 안 될 것 같아 남편과 같이 분갈이를 하러 꽃집에 가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남편이 차를 가지고 오는 것을 기다리며 몬스테라와 둘이 서 있었다. 아니, 몬스테라는 누워 있었다. 괜스레 그 모습에 내 모습이 투영되었다. 나 또한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고 저렇게 주저앉아 있는 것은 아닌지. 살고자 발버둥 치며 뿌리를 내리지만, 뿌리는 허공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욕심껏 잎을 내지만, 잎이 무거워 줄기가 잎을 지탱하지 못하고 바닥을 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꽃집에 가서 몬스테라 분갈이를 해 줬다. 예전보다 훨씬 깊은 화분, 긴 지지대 덕택에 땅을 기던 몬스테라가 하늘을 향해 자라길 시작했다.

"아니, 몬스테라를 이렇게 키우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화분의 흙도 바짝 말라있어요. 이렇게 살아있는 게 기적이에요."

꽃집 아저씨가 했던 말을 남편이 전해줬다. 미안한 마음에 몬스테라에게 물을 흠뻑 준다. 몬스테라가 주인들의 무지 속에서도 잘 버텨주어 고마운 마음이다. 사랑의 눈빛을 담아 몬테스라를 바라본다. 나도 다시 저렇게 올곧게 자라길 바라며.


살아있는 게 기적이다.


'꿀꺽' 음식을 삼키지만 버겁기만 한 나는 '말라가고, ' 바쁜 현대사회 속에서 경쟁에 치여 쫓기며 방향을 찾지 못해 헤매지만, 그런 나에게도 물 한 모금 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잘 버텨주어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지지대 없이 땅을 기다가 지지대를 만난 몬스테라를 바라보며, 나의 지지대는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며칠 전, 선생님들의 기도가 떠오른다.

날 사랑해주는 소중한 분들이 떠오른다.

그분의 약속을 기억한다.


그래, 다시 일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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