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정착한 첫해(2014년), 아이들 친구 엄마들을 통해 제주들 불축제에 대해서 들었다. 매년 정월대보름에 열리는 제주의 대 표적인 축제라는데, 우리 가족에게는 생소한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제주 들불축제’를 검색하니 오름에 불탄 사진들이 펼쳐져 있었다. 아직 바람이 매웠지만, 우리 가족은 호기심에 이끌려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가기 위해 여기저기서 정보들을 듣고 찾아봤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축제인 제주들불축제는 1997년에 개최되어 지 금까지 매년 정월대보름에 열리고 있다. 2000년부터 새별오름에서 열 린다. 새별오름은 가을에 억새가 아름다운 곳인데, 매년 들불축제 때 면 오름 전체를 덮고 있는 억새에 불을 놓는다. 들불축제는 방목을 하 던 목동(쉐테우리)들이 목야지에 불을 놓아 양질의 새 풀이 돋아나도 록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 농가에서는 보통 두세 마리의 소를 키웠다. 이 소들은 밭을 경작하고, 수확한 농산물을 운반하는 일을 했다. 농한기에는 마을마다 양축 농가들이 윤번제로 중산간 지역의 초지를 찾아다니며 방목 관리를 하던 풍습이 있었다. 이때 중산간 초지의 해묵은 풀을 없애고, 해충을 구제하기 위해 마을별로 늦겨울에서 경칩에 이르는 기간에 목 야지에 불 놓기를 했다. 이를 ‘방애’라 하는데 액을 막는 행위라는 뜻을 가진 제주 말이다. 이런 ‘방애’로 인해 중산간 일대는 마치 들불이 사방에서 난 것처럼 일대 장관을 이루곤 했다. 이러한 제주 선인들의 옛 목축문화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승화 발전시킨 것이 제주들불축제다.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자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버스가 다니는 평화로로 향했다.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 교통체증 때문에 차를 가져가면 힘들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버스를 탔다. 주민, 관광객,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아 버스는 만원이었다. 새별오름이 가까워질수록 교통체증은 더욱 심했다. 바람까지 많이 불어서, 버스에서 내려 행사 장소까지 걸어가는 길이 제법 추웠다.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제주도 전통문화를 볼 수 있는 공간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축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먹거리도 많았다. 추위를 이겨 내며 배를 채운 우리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행사를 즐겼다.
제주들불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불 놓기 행사는 둘째 날 저녁에 한다고 했다. 정보 부족으로 첫째 날 와 버려서 아쉽게 오름에 불 놓는 것은 보지 못했다. 다음 날 오후, 텔레비전에서 들불축제 소개하는 것을 보고 나니 그래도 오름에 들불을 놓는 장관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축제 현장으로 갔다. 버스를 기다리는 곳까지 길게 늘어선 차들의 모습은 어제 와는 사뭇 달랐다. 버스 안도 전날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붐볐다. 모두 오름에 불 놓는 것을 보기 위해서리라. 시간은 점점 흘렀지만, 버스는 제자리걸음이었다. 해는 지고 날은 점점 어두워졌지만 아직 축제장에도 도착하지 못했다. 이러다 오늘도 허탕을 칠 것 같아 초조했다. 마침내 정체된 도로가 조금씩 풀리면서 새별오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 놓는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아직 불을 놓지 않은 것 같았다. 버스에서 내려 오름을 향해 뛰었다. 사람들이 많아서 행사장까지는 못 가고 오름 전체가 보이는 곳에서 불 놓기를 기다렸다. 진행자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오름이 붉은색으로 물들면서 하늘 높이 불길이 솟았다. ‘무사안녕’이라는 글자가 보이는 붉은 기운이 밤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라갔다. 아마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새로운 한 해의 무사안녕을 기원했을 것이다. 우리 가족도 2년 동안의 제주살이를 잘 보낼 수 있기를 기도했다.
축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고난의 여정이었다. 한 번에 쏟아진 인파 때문에 도로는 마비가 됐고, 수많은 인파에 섞여 걷고 걸 어서 임시로 마련된 버스 정류장까지 갔다. 몇 대의 버스를 보내고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요즘도 정월대보름이 되면, 텔레비전에서는 제주들불축제에 대한 뉴스를 방출한다. 아직 들불 축제를 보지 못했다면, 한 번쯤 들불의 열기를 경험해 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