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제주에서 명절 보내기

by 배태훈

어린 시절, 명절이 되면 새 옷을 입고 먹을 것을 짊어지고 온 가족(4명, 많으면 20명이 넘는 대가족)이 고향을 찾았다. 목포에서 4-5시간 동안 배를 타고 가야 하는 곳임에도 부지런히 다녔다. 우리 고향은 집성촌 형태를 이룬 곳이었기 때문에, 동네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친척이었다. 누군지 잘 모르지만, 가는 곳마다 어른들을 만나면 인사하면서 ‘배씨 집안 누구의 아들’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 상대방은 “아~ 니가 **이 아들, 태훈이구나! 니 아빠(혹은 엄마)랑 꼭 닮았다.”라고 대답하셨다. 명절마다 보는 얼굴 덕분인지 20대가 되어서는 내가 알아서 인사를 하고 다녔다.


명절은 멀리 떨어져 지낸 가족, 친척들이 모여 함께 명절 음식을 먹고 그간의 삶들을 이야기했다. 예배를 드리고, 제사를 드리면서 가족애를 다독였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한 시기에는 명절만큼은 배불리 먹고, 귀한 음식도 먹는 날이었다. 최근에는 명절의 의미가 많은 줄어들었다. 교통과 통신시설이 발달하면서 가족 간의 왕래나 연락이 쉬워졌기 때문에 굳이 명절이 아니더라도 소식을 전하면서 지냈다. 또 핵가족화가 급속도록 진행되면서 가족과 친척 간의 의미로 변화되었다. 그래서 요즘 명절은 또 하나의 연휴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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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추석(2014년)은 최대 열흘간의 연휴였다. 제주도 인구가 약 67만 명인데, 연휴기간 동안 52만 명 정도가 제주도를 찾았다고 한다. 제주도 인구가 이 기간에 두 배가 된 셈이다. 열흘이라는 긴 연휴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가족단위로 여행을 간 경우가 많았다. 우리 가족도 제주도를 가려고 했는데, 집안에 사정이 생겨서 가지 못했다.

제주도는 다른 곳보다 이동인구가 많기 때문에 현지에 있는 사람들도 움직이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기간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단위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12인승 승합차를 구하기가 힘들다. 어느 신문기사를 보니, 명절이 생각보다 긴 연휴가 되면 정작 제주도가 고향인 사람들은 교통편을 구하지 못해서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도가 고향이 지인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명절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우도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우도에 들어가더라도 관광객들이 많아서 정신이 없다고 말한다. 긴 연휴가 지난 후에 생기는 각종 쓰레기로 제주도는 몸살을 앓는다. 이번 설날도 연휴가 4일이다. 작년 추석 때처럼은 아니지만, 이번에도 많은 가족들이 제주도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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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사는 사람들의 명절은 어떻게 보낼까? 육지처럼 명절 음식을 하고 친척들이 함께 모이는 경우도 있지만, 관광지 특성상 가족이나 지인의 여행의 거점지가 되는 경우, 식당이나 관광지 관련 사업을 한다면 온 가족이 동원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역으로 고향을 찾아 육지로 나가는 경우도 많다.


서울에 있을 때는 우리 가족은 명절에 본가와 처가를 다녀왔고, 그 외 시간은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가끔 시골을 방문하거나 여행을 한 경우도 있었다. 제주도에 사는 2년 동안 가족들이 여행 겸 명절을 보내려고 제주도에 왔다. 명절마다 제주도 투어를 하면서 구석구석 다녔다. 제주도가 관광지이기 때문에 명절 당일에도 문을 연 식당들이 많아서 여행하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많은 탓에 제주도를 구경하는 것인지 사람을 구경하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다. 그래서 두 번째 명절부터는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으로 다녔다. 가족과 함께 보낸 명절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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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우리 가족끼리 보낸 적이 있었는데, 제주도에 친척도 없었고, 지인들도 육지로 나가거나 가족들과 함께 보냈기 때문에 오로지 우리 가족만 보냈다. 다른 날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날이었지만, 명절에 고립된 느낌 때문이었던지 육지에 있는 부모님과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분위기를 바뀌기 위해 영화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지만, 그 허전함은 채울 수 없었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은 명절이라고 친척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관광지마다 가족여행을 오는 것을 보면서 육지에 계신 부모님이 새삼 그리웠다. 이런 그리움 때문에 아내랑 한참을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난다. 제주도는 섬이기 때문에 고립된 느낌이 있다. 제주도로 이주한 사람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외롭고, 우울한 마음을 달랠 수 없어서 제주의 생활을 접고 다시 육지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뜻하지 않고 명절은 제주도에서 보내면서 가족의 그리움을 느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명절이 되면 고되고 긴 여정이지만 고향을 찾고, 가족을 찾는 것은 아닐까? 이번 설날에는 가족들과 좋은 추억들을 만들고 싶다. 여러분도 좋은 추억이 가득한 설날을 보내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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