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제주도의 정(情)

by 배태훈

이번에는 제주도에서 교제했던 여러 현지인들에게 들었던 제주도 이야기하려고 한다. 제주도에서 농사를 짓는 분, 정치에 관심을 많은 분, 제주도 자연환경을 연구하는 분, 개인 사업을 하시는 분 등 제주도와 함께 하신 분들이었다. 일제강점기를 경험하고, 4.3 사건을 온몸으로 견디신 분들도 계셨다. 6.25로 제주도에 피난 오신 분들을 비롯해서 제주도의 아픔과 상처를 가슴에 앉고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도 들었다(개인적으로 들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소 실제와 다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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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제주도에는 세 가지가 많다고 했다. 바람, 돌, 여자다. 제주도의 바람은 유명하다. 특히 겨울에 불어오는 북서풍은 대단하다. 북서풍이 불어오는 시기에 침몰한 배가 많았다고 한다. 나 역시 제주도 바람을 경험했기에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다. 돌도 얼마나 많은지 제주도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우리 집 뒷마당에 텃밭을 만들기 위해 돌을 거르는 일을 했다가 결국 내가 먼저 지치고 말았다. 제주도 현지인 분이 하는 말이 ‘그냥 돌 사이에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으면 된다’고 했다. 다들 그렇게 한다고. 그분의 말을 듣고 주변의 밭들을 보니 정말 밭이 온통 돌들이었다. 그 사이에 작물들이 나와 무럭무럭 자랐다. 그만큼 제주도에는 돌이 많다. 여자가 많은 이유는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남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주도에 세 가지 없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현지인에게 이 질문을 받고 한참 생각을 했다. 제주도 관광지에 필수 코스에서 들었던 대문과 도둑이 없다는 이야기. ‘거기다 하나는 뭘까?’ 아무리 떠올리려고 했지만, 뭔지 알지 못했다. 당시에 여러 가지 대답을 했던 것 같은데, 모두 정답은 아니었다. 정답은 뭘까? 거지였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깜짝 놀랐다. 전혀 뜻밖이었기 때문이었다.


“제주도에는 거지가 없었어요. 조금만 움직여도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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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들이 모여서 외지인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말에서도 ‘육지 것들’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도민끼리 똘똘 뭉쳐야 할 것들이 있었다. 이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괸당의 문화가 자리 잡게 되고, 육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배타적인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제주도에 대한 선이해가 없는 외지인에게는 텃세로 생각하고 서로를 탓하며 지냈을 것이다. 나 또한 육지 것이었고, 뜻하지 않은 텃세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우리가 육지 것들이라서 그런가?’


그런데, 거지가 없다는 것을 듣고 내가 뭔가 모르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지 거지가 없는 곳이 없다. 그런데 여기는 왜 없을까? 현지인의 말처럼 육지에서 망한 사람들이 맨몸으로 와서 기반을 세울 수 있는 곳이 바로 제주도로 할 만큼 조금만 움직여도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했다.


제주도에서 지내면서 부족했던 그 뭔가를 알아갔다. 바로 제주도의 정(情)이다. 제주도에는 대부분 1년에 작물을 세 가지 정도 한다. 출하할 것들을 거둔 다음에 밭을 새롭게 갈 때마다 상품가치가 없는 것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나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 예부터 내려오는 이삭줍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주변 사람들에게 참 많은 작물들을 받았다. 브로콜리, 양배추, 콜라비, 무, 수박, 귤 등. 어떤 경우에는 그 양이 너무 많아서 우리가 받은 것들을 주변 분들에게 나눠드렸다. 이렇게 제주도민들에게 정이 많았다. 거지가 없었던 것도 거지가 되기 전에 주변에서 어려운 가정들을 돌봐줬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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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믿었기에 대문이 없이 정낭으로 집안에 사람이 유무를 알렸고, 집을 개방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 믿음에 보답하듯 도둑이 없었고, 사람에 대한 믿음은 서로를 돌보는 마음까지 이어져 거지까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마음이 들면서 제주도가 따뜻하게 느껴졌고, 그분들이 베풀어주신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벌써 제주도를 떠난 지 2년이 흘렸지만, 햇살에 그을린 그분들의 미소가 떠오른다. 제주도가 우리 가족에게 전해준 정(情). 오늘도 제주도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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