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가을이면 학교마다 백팀과 청팀으로 나누어 운동회를 하곤 했다. 운동장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쏟아져 나오면, 운동장이 꽉 찼다. 응원팀들이 앞에 나와 깃발을 흔들며 백팀, 청팀을 응원했다. 아이들은 목이 터지듯 응원가를 불렀고, 팀 대표로 나서는 아이들은 응원에 힘입어 열심을 다했다. 각 학년마다 팀 대결이 있었는데, 백색과 청색 모자와 띠를 매고 전쟁을 치르듯 맹렬하게 임했다. 점수가 올라갈 때마다 한 팀은 함성을, 다른 한 팀은 한숨을 쉬었다. 운동장 곳곳마다 부모님들이 아이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모여들어서 운동회는 마을 잔치와 같았다. 시골학교도 도시학교도 비슷했다. 가을이 되면 가끔 그때가 생각나곤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 건물을 짓기 위해서 운동장이 줄어들었고, 운동회의 규모는 점점 줄어들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격년으로 운동회와 발표회를 했다. 큰 아이가 1학년 때 전 학년이 참여하는 가을 운동회를 했는데, 부모들의 참여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수도 그리 많지 않았고, 시간도 짧게 했다. 3학년 때에는 소운동회로 가족들을 초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눠서 2시간 정도 자체 행사로 했다. 점점 운동회가 사라지는 듯했다.
제주도에서 보낸 첫 해 가을, 학교에서 가을운동회 통신문이 왔다. 가족들이 다 참여할 수 있도록 운동회를 공휴일에 했다. 차를 타고 다니는 곳마다 가을운동회에 현수막이 걸려있고, 마을 전체가 들썩였다. 옛 생각에 아이들처럼 우리 부부도 운동회를 기대했다. 운동회가 열리는 날 아침부터 학교 앞은 시끌벅적, 학교 앞에 간이 자판이 열리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생동감이 넘치는 분위기였다.
가을운동회. 전교생이 80여 명이지만, 거의 모든 부모님과 가족들이 참여해서 운동장이 꽉 찼다. 교화인 동백꽃과 교목인 녹나무를 팀 이름으로 나뉘어 열심히 대항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곳 제주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할 때마다 그 모습을 담기 위해 부모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렸다. 부모들이 함께 참여하는 경기도 많아서 우리 부부도 열심히 참여해서 상품도 탔다. 아이들만의 축제가 아닌 온 마을이 함께하는 축제가 제주도 시골학교의 운동회였다. 학교 선생님뿐만 아니라 학부모회, 그리고 마을 사람들까지 학교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다. ‘가을운동회는 이런 맛이 있어야지.’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학년 달리기에서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서 달렸고, 서울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달리기 1등’ 도장도 받았다. 운동회의 꽃, 이어달리기. 각 학년마다 대표하는 남녀 아이들이 모였다. 그곳에 큰 아이가 있었다. 달리기가 빠르지 않았지만, 학년 대표였다.
어느 날, 큰 아이가 학교에서 오더니 흥분하면서 이야기했다.
“아빠, 저 이어달리기 대표됐어요.”
“네가? 와~ 대단하다.”
달리리가 빠르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놀랐다. 큰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대표가 됐는지 듣고서 한참을 웃었다. 큰 아이 학년은 모두 12명이었다. 남자 3명, 여자 9명. 큰 아이가 오기 전까지 남자가 2명이었기 때문에 두 아이는 항상 팀을 나눠 이어달리기 대표였다. 큰 아이가 오자 이어달리기 대표로 하기 싫다면서 대표를 뽑는 시합에서 일부러 꼴찌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2등을 한 큰 아이가 1등을 한 친구와 학년 대표로 뽑힌 것이었다. 어떻게 됐든지 대표가 되었으니 축하해줬다.
운동회 달일 최선을 다해서 달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가족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은 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도 제주도에서 쌓고 있었다. 이듬해에도 가을운동회는 열렸고, 학교의 전통은 계속 이어졌다. 학생 수가 조금 많아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운동회를 즐겼다.
서울에 돌아온 지금도 학교에서 운동회가 열리긴 하지만, 작은 행사로 끝난다. 아이들도 운동회 때마다 제주에서의 가을운동회를 이야기한다. 그때 가을운동회의 추억이 우리 가족에게 기쁨을 준다. 고맙다. 제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