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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24. 2023

저항은 곧 마리아 오자와의 신음소리.

메챠쿠챠 와타시노 일상


시국이 시국인 만큼 자칫 예민할 수 있는 글이지만 우리 너그러운 독자님들께서 어련히 사춘기의 반항, 어린 날의 치기로 귀엽게 봐주실 것이라 믿고 한 자 적어보련다.



이천년 후반, 그 시절 교권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선생님들께 개새끼니, 씹새끼니 따위의 쌍욕을 듣는 것은 별 화제도 되지 않는, 말 그대로 일상이었고 체벌은 일단 귓방망이 한 대 맞고 나서야 시작이었으니.


두발 단속하시던 학생 주임 선생님께서 서툰 가위질로 학생의 머리를 자르시다 귓바퀴 일부를 잘라버린 일정도는 되어야 우리들은 와씨,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며 화제에 올렸다.


그런 연유로 당시 내게 선생님들은 적이었다. 문제는 나 또한 인간 자체가 간사하고 졸렬하고 옹졸하고 치졸한 탓에 만만한 선생님들 앞에서만 말썽을 부렸다는 것인데 그중 내 꾀에 내가 넘어간 일화가 있다.



남자 고등학교 학생들은 종종 여선생님을 흠모하고는 한다. 우리 학교 윤리 선생님께서는 체구가 아담하고 선한 인상을 가진 분이셨는데 이 분을 남몰래 또는 대놓고 흠모하는 남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무라카미 류의 69, 야마다 에이미의 나는 공부를 못해,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떠위의 책들을 아주 감명 깊게 읽었다.

그중에서도 남쪽으로 튀어! 속 주인공의 운동권 출신 아버지, 우에하라 이치로에 심히 몰입하고 있었다. 때문인지 제도권 교육에 맞서야 할 우리 청춘들이 호르몬 따위에 현혹되어 선생들을 흠모하는 꼴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나는 외로운 저항을 시작했다.


윤리 시간이 되면 교과서 대신 집에서 가져온 소설을 책상 위에 두고 읽었다. 옆자리 짓궂은 친구와 장난을 치기도 하고 윤리 시간이 오후에 있으면 식곤증에 굳이 맞서지 않고 엎드려 자기도 했다.

그것은 저항이었다. 간사하고 졸렬하고 옹졸하고 치졸한. 비주류 과목이었기 때문일까. 선생님께서는 내가 그러든 말든 무관심으로 일관하셨다. 그리고 무관심은 체벌을 받는 것보다 더 굴욕적이었다.


지금이야 태블릿pc가 있지만 당시는 스마트폰도 보급이 덜 됐던 시기였다. 대신 pmp라는 전자기기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pmp란 동영상 파일을 저장해서 언제든 시청할 수 있는 기기로 주로 인터넷 강의를 보는데 쓰였다.


문제의 그날 윤리 수업은 5교시에 있었다.  나는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pmp를 하나 빌려뒀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맨 앞자리 친구와 자리를 바꿔 앉았다. 선생님께서 들어오시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교탁을 마주하고 앉은 나는 선생님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도리어 보란 듯이 이어폰을 귀에 꼽았다. 그리고 pmp의 저장 목록을 뒤적거렸다. 수많은 인터넷 강의를 지나 몇 편의 영화 파일이 보였다. 그 아래로 조류의 이름을 딴 폴더가 있었다. 폴더를 열자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


마리아 오자와.


이런 취향이었어? 짜아식, 이런 취향이었구먼! 싱글벙글 영상을 재생했다. 귀에 익은 멜로디가 흘렀다. 소리가 작아 볼륨을 최대로 키우고 얼른 하이라이트를 눈에 담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재생 바를 중간으로 옮겼다. 남녀가 뒤엉킨 절정의 장면이 재생되었다. 옆자리 친구도 영상에 관심이 생겼는지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러고는 나를 툭 치더니 씩 웃는다. 나도 씩 웃었다. 나의 웃음에 친구가 대소한다. 그의 웃음소리가 내 귀를 막은 이어폰을 뚫고 들린다. 그렇구나, 너도 저항에 동참하는 거구나. 그런데 나는 선생님을 앞에 두고 대소할 정도의 배짱은 없는데… 친구의 기행에 심히 당황해 교탁 위 선생님을 올려다보니 혐오가 담긴 시선으로 친구가 아닌, 오히려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이윽고 반 친구들 모두가 웃는다.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마리아 오자와의 신음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이어폰을 주욱 당기자 pmp에 연결되어 있어야 할 금 색의 연결 잭이 딸려왔다.


그 후로 수업은 계속되었다. 아니, 계속되었지 않았을까.  일이 터지고 교실에서 쫓겨나 교무실에서 무릎 꿇고 앉아있던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여하튼 이후로 나의 저항은 멈췄다. 물론, 세상 모든 옹졸한 이들이 무릇 그렇듯이 윤리 수업 때에만.


계속


* 이 글은 현시점 교권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인 의도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이야기로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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